"경찰이 갑자기 에워싸더니 강제해산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 사람이 쓰러졌는데 구급차도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생후 16개월 입양아가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 사건' 결심공판 당시 엄벌 요구 시위차 법원 주변에 모인 시민들을 경찰이 과잉 진압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경찰은 질서 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적법 조치를 했다는 입장이다.
26일 시민단체와 경찰 등에 따르면 살인 및 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를 받는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결심공판이 진행된 14일 오후 서울남부지법 정문과 후문 쪽에서 5시간가량 시민들과 경찰의 대치가 이어졌다. 이날 법원 주변에는 이른 아침부터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대아협) 회원을 포함한 70여 명의 시민이 모여 피고인에 대한 재판부의 엄벌을 요구했다.
이전 5번의 공판 기일과 마찬가지로 이날 시위도 한동안 집회 아닌 릴레이 1인 시위 형태로 이뤄졌다. 집시법은 법원 100m 이내에서 여러 명이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현장 경비를 위해 기동대 5개 중대 수백 명을 배치했다.
문제가 발생한 시점은 오후 3시 30분쯤. 오후 2시 개정한 재판에서 있을 검찰 구형 결과를 기다리면서 대아협 회원 20명가량이 재판 종료 후 피고인 호송차가 나올 법원 후문 쪽에 모여 앉자, 경찰 수십 명이 즉시 스크럼을 짜고 이들을 에워쌌다. 정문 쪽에 있다가 상황을 접한 회원들이 항의 차원에서 합류하면서 흡사 경찰에 둘러싸여 연좌농성을 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이후 경찰이 물리력을 동원해 회원들의 해산을 시도하면서 마찰이 빚어졌다는 것이 시민단체 측의 주장이다. 대아협이 공개한 영상에는 한 사람에게 여경 네댓 명이 붙어 앉은 자리에서 끌어내려 하는 장면이 담겼다. 공혜정 대아협 대표는 "무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고 맨몸으로 종이 한 장 들고 쉬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경찰이 사방으로 못 나가게 가두면서 (충돌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강제 해산 시도에 앞서 경찰에 '호송차가 나올 때 여기서 3분만 피켓을 들고 소리칠 수 있게 해달라'고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거부당했다는 것이 대아협 측 주장이다. 이후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는 공판이 끝난 오후 8시 20분쯤까지 이어졌다.
시민단체 측은 경찰의 대응이 과도했다는 입장이다. 대아협 회원 이수진(35)씨는 "경찰은 오후 5시쯤 해산 요청 방송을 했다지만, 진압은 이미 1시간 반 전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경찰이 소화기와 방패를 소지하고 경비에 나선 것을 지적하며 "화염병을 던지는 것도 아닌데 과도한 장비를 동원했다"고도 했다. 당일 강원 정선에서 왔다는 김성현(42)씨도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목소리를 내려고 온 것뿐인데 갑자기 경찰 여러 명이 와서 밀었고 어떤 엄마는 머리채를 잡히기도 했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대치 과정에서 시민 2명이 쓰러져 구급차가 출동했는데도 경찰이 길을 터주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고은(33)씨는 "한 엄마가 어지럼증과 구토를 호소하다 쓰러져 몸을 떨고 있었는데 경찰들은 '일어나라'고만 했다"며 "구급차가 법원 앞에 도착했지만 (시위대를 에워싼) 경찰이 비켜주지 않아 구급대원들이 비집고 들어와야 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의식을 잃었다는 송아름(38)씨는 "당일 오후 7시쯤 경찰 네댓 명이 끌고 나가려 해 버티다가 의식을 잃었다"며 "정신을 차려보니 바닥에 누워 있었고 옷이 벗겨지고 찢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당일 경찰 대응을 문제 삼아 관할서인 서울양천경찰서의 서정순 서장을 직권남용, 직무유기 등 혐의로 21일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고발인 측은 "화염병이 아닌 피켓을 들고 있던 시민을 폭도로 몰아 길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방패와 소화기 등을 동원해 과잉진압을 했다"며 "서장이 이를 지시했다면 직권남용이고, 이를 방치하고 경찰 직원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면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양천경찰서 측은 과잉진압 논란에 대한 항의 민원 답변을 통해 "수차례 안내방송을 통해 이동을 권고했으나 응하지 않아 호송차량 이동 방해, 교통사고 등 안전사고 발생이 우려돼 부득이 법원 정문과 후문에 연좌한 참가자들을 여경기동대원들이 안전하게 이동조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찰이 구급차 진입 시도를 막았다는 주장에 대해선 "혼잡한 현장 상황을 본 구급대원들이 자체 판단으로 차를 세워두고 들것을 들고 현장에 왔으며 이에 경찰은 진입로를 마련해줬다"고 반박했다. 현장 경비인력의 방패·소화기 소지에는 "직접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기동대 출동 시 필수 장비"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