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의 중재를 기대했지만, 말 뿐인 합의에 실망해 시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쟁취하겠다는 의지를 더욱 다진 것이다. 여전히 총탄으로 자국민을 계속 억압하는 군부의 행태는 아세안 회의에서의 협조적 태도가 기만에 불과했다는 사실만 입증한 꼴이 됐다.
26일 외신에 따르면 24일 아세안 정상회의 후 잠잠했던 반(反)군부 거리 시위가 이날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재개됐다. 만달레이주(州) 바간 주민들은 지역 특산품인 도자기를 머리에 이고 군부 퇴진을 요구했다. 도자기에는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 그림이 새겨졌다. 카친주에선 오토바이를 탄 청년들이 미얀마 민주진영을 대표하는 국민통합정부(NUG)를 지지하는 깃발을 들고 거리를 누볐다. 양곤 등 대도시에서도 산발적인 기습 시위가 이어졌다.
미얀마 국민은 아세안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쿠데타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을 회의에 초청한 것부터 불만인데, 시위대의 최우선 요구 사항인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등 정치범 석방조차 관철되지 못한 탓이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는 “매일 무고한 시민이 죽어나가는 데도 아세안은 불분명한 요구만 했다”며 “합의문 그 어디에서도 미얀마인에 대한 존중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아세안의 안이한 마음가짐은 학살 당하는 미얀마 시민의 뺨을 때린 것이나 다름 없다” 등의 분노가 넘쳐났다.
군부는 이날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흘라잉 사령관이 아세안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는 관영매체의 선전만 반복했을 뿐이다. 합의사항 이행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외려 뒤늦게 알려진 흘라잉의 행적은 이번 회의가 그저 ‘정치적 쇼’였다는 심증만 한층 키웠다. 그는 24일 아세안 회담장 인근에서 크리스틴 슈래너 버기너 유엔 특사를 만나 장시간 쿠데타가 정당했다는 주장만 되뇐 것으로 전해졌다. 버기너 특사의 입국 요구에도 확답을 주지 않았다.
아세안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몰린 주말 군부는 6명의 목숨을 또 앗아갔다. 국가폭력은 민주세력의 편에 선 승려를 체포하기 위해 ‘불가침’ 영역이던 사원까지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민주화 시위 도중 숨진 시민은 751명, 불법 체포된 이는 4,473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