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25일 발표한 ‘2021년 상반기 적극행정 사례’를 보고 황당했다. 무려 '최우수 사례'로 지난해 11월 초등학생이 온라인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앱) '하쿠나라이브' BJ들에게 전세 보증금 1억3,000만 원을 보냈다가 돌려받은 사례가 선정돼서다. 방통위는 “국내 관계사를 설득해 3일 만에 환불 조치를 완료하고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추진하려 노력한 점이 높게 평가받았다"고 했다.
이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로선 이런 자화자찬이 당혹스러웠다. 해당 초등학생의 아버지는 하쿠나라이브 측에 환불 요청을 한 뒤 거부당하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조정위)에서 절차를 밟고 있었다. 3개월이나 환불이 지연돼 초조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대책 마련과 제도 개선에 대한 주무부처는 방통위라는 사실을 그 아버지는 몰랐고 취재 기자조차 주무부처를 파악하는데 한참이 걸렸을 만큼, 행정절차에 대한 안내는 엉망이었다.
알고보니, 조정위에 앱 과금에 대한 미성년자 환불 관련 사건 접수는 지난 4년간 약 3,600건에 달했다. 하쿠나라이브와 똑 닮은, 그러나 ‘덜 자극적인’ 3,600건이 어떻게 해결됐는지 알려진 것이 없다. 피해가 쌓이는 동안 대책 마련엔 침묵하던 방통위가 반향이 큰 사건이 일어나서야 법 개정에 나서고, “피해자의 전반적인 사항을 고려해 신속하게 해결한 사례”라며 자화자찬하는 모양새가 유감스럽다.
취재 당시, 방통위의 담당 주무관이 기자에게 했던 무책임한 답변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가 자기 휴대폰을 사용했으면 그렇게 많은 금액을 결제할 수 없었을 것인데, 어머니가 아이에게 휴대폰을 준 것이잖아요. 단지 요금이 많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는 개입하기 어려워요."
기자가 여러 차례 되물은 뒤에야 주무관은 "일단 조정위 결과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런 태도를 보면, 이후 언론 보도가 쏟아지면서 사회적 공분이 일지 않았다면 방통위는 절대 먼저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정부 기관도 법률에 따라 행동 범위가 제한돼 있고, 내부 구성원마다 생각과 태도가 달라서 공무원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다. 늦었다고 해도 후속 입법을 추진하는 것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건 지난 과오를 바로잡은 것이지, “이용자 피해 구제를 적극적으로 나선 최우수 사례”라고 상을 줄 건 아니라고 본다. 여론에 떠밀려 뒤늦게야 움직였던 이 사례가 방통위의 '최우수 적극행정 사례'라니, 그렇다면 다른 사안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일까. 앞으로는 진정으로 방송·통신 이용자들을 위해 선제적인 적극 행정 사례가 많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