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길면 10년 봐요."
자동차 부품업체에 근무하는 이원호(가명·46)씨의 대답이다. 이씨는 요즘 동료들끼리 미래 일자리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그는 상용차로 불리는 트럭, 버스의 '머플러'를 만들어 국내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는 회사에 다닌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되면 머플러 수요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이 회사를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까,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다.
머플러는 자동차 뒤로 매연을 내뿜는 배기구를 포함한 엔진 배기 시스템이다. 소음기라고도 불린다. 부르릉 거리는 낮은 중저음와 함께 밀려오는 묵직한 진동은 오랫동안 자동차라는 물건의 상징 그 자체였다. 자동차 회사마다 이 느낌을 잘 살리기 위한 기술 경쟁을 벌일 정도였다. 하지만 전기차, 수소차 시대엔 가장 먼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처지가 됐다. 더불어 이씨의 일자리도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이씨의 위기감은 좀 더 현실적이다. 친환경차 전환 문제는 아직 승용차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이씨는 "상용차가 온실가스 배출량이 더 많다는 이유로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면 승용차보다 전환이 오히려 빠를수 있다"고 본다.
괜한 걱정이 아니다. 실제 정부는 주행거리가 길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많은 버스부터 전기버스, 수소버스로 대체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씨는 "우리처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전환 속도는 더 빠르다"며 "5년 뒤면 51세인데 그 나이에 퇴직한들 어디를 가겠냐"고 말했다.
자동차는 현 시대를 대표하는 산업이다. 자율주행차처럼 고도의 기술력을 선보이는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국내 자동차 보유대수(약 2,400만 대·인구 2.16명당 1대, 2020년 6월 말 기준)에서 나타나듯 보통 사람의 일상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산업적으로도 자동차 산업이 만들어내는 일자리 비중은 상당하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지난해 6월 발간한 '자동차산업 직간접 고용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자동차산업의 직간접 고용인원은 190만 명으로 우리나라 총 고용 인원의 7.1%를 차지한다. 완성차 업체와 부품사는 물론 소재, 정비, 주유 등 전·후방 연관 산업이 여럿 얽혀 있기에 자동차 산업의 변화는 사회 전반의 변화를 부른다. 자동차 정비만 해도 전기차의 경우 고압 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반드시 절연 장갑을 착용해야 하고, 전기에 대한 일정 정도의 이해도 있어야 한다. 내연차와는 확연히 다른 작업 방식과 지식이 요구되는 셈이다.
변화는 생각보다 가까이 와 있다. 정부는 올해 내연차 판매 중단 시기를 결정해 공표한다. 앞서 서울시는 2035년부터는 휘발유차, 경유차의 신차 등록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해외 완성차 업체도 내연차 생산 중단을 예고하고 있다. GM은 2035년, 볼보는 2030년에는 완전한 전기차 회사로 탈바꿈하겠다고 선언했다. 노르웨이는 당장 4년 뒤인 2025년부터 내연차 판매를 금지한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환경 규제가 강해지면서 엔진, 내연차로는 이를 맞추기 힘들어지고 있다"며 "소비자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정책에 따라 전기차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그는 "차를 평균 15년 탄다고 했을 때, 올해 차를 샀다면 다음번 차를 살 때는 내연차를 사고 싶어도 파는 곳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외부 충격은 당장 완성차 업체에서 나타났다. 지난달 10일 아이오닉5 생산을 두고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벌어진 노사의 '맨아워(자동차 생산 라인에 투입할 근로자 수·Man Hour)' 협상 과정이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첫 완전 전기차인 아이오닉5 생산을 위해 울산 1공장, 2라인에 전기차 전용 라인을 만들었다. 1공장, 2라인은 원래 '코나EV'와 '밸로스터'를 생산하던 라인이었는데 아이오닉5는 이들 차종에 비해 부품 개수도 적고 생산 과정이 단순해 필요한 인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당연히 협상은 공전을 거듭했고 생산은 한 달가량 지연되기도 했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인원이 많이 빠지는 데 대한 노사 입장 차가 컸지만 결국 전기차 신산업 방향으로 가는 데 합의했다"면서도 "구체적인 감소 인원은 밝힐 수 없다"며 입을 꾹 다물었다.
보통 전기차는 내연차에 비해 부품이 20~30% 정도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연차의 엔진, 얼터네이터, 스타터 등 여러 부품이 전기차 모터로 대체되기 때문이다. 부품 수가 줄면 개별 부품을 1차적으로 조립한 '모듈' 수도 적어진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2만, 3만 개쯤 되는 내연차의 개별 부품은 완성차 업체에 500, 600개 단위의 모듈로 들어가는데, 현대차 기준으로 봤을 때 전기차 모듈은 내연차에 비해 28% 정도 줄어드는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그만큼 필요한 인력도 줄어든다.
그럼에도 완성차 업체가 받는 충격보다 영세 부품업체의 충격이 더 클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완성차 업체의 경우 생산직군의 고령화 때문에 일자리 충격이 크진 않으리라는 예상이다. 현대차 노조에 따르면 올해 말 은퇴하는 61년생 조합원은 약 2,400명으로 68년생까지 감안하면 매년 약 2,400명씩 은퇴한다. 향후 8년간 은퇴로 인한 자연 감소분만 2만 명 가까이 된다는 의미다.
정부도 이 점을 알기에 지난해 '미래차 확산 및 시장선점전략'을 내놓으면서 "내연차 부품업체 1,000곳을 2030년까지 전기차, 수소차 부품업체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사업 전환에 필요한 자금과 컨설팅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자동차 엔진에 들어가는 흡기·배기 밸브를 생산하는 A사 직원은 "부품업체는 완성차처럼 자금 여력이 없는 데다, 가장 큰 문제는 자동차 산업이 워낙 수직 구조라 완성차 업체가 우리 부품을 받겠다고 확답해야 기술 개발을 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 때문에 부품업체들은 다들 완성차 업체가 뭘 줄 수 있는지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내연차에 특화된 부품을 만드는 회사들의 위기감은 더 크다. 전기차에다 자율주행 기술까지 접목되면서 자동자는 점점 '금속 기계'를 넘어 '전자 제품'이 되어가고 있다. 승용차의 머플러를 생산하는 B사의 직원은 "지금까지 우리의 주된 작업은 용접이었는데, 미래차 부품 주문을 받아온들 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내 9,000여 개의 자동차 부품사 중, 내연차 전속 부품만 만드는 회사는 약 2,700개 수준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연일 신산업 육성이 가져올 장밋빛 미래만 강조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구산업 노동자는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밀려날 가능성이 더 크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는 전기차 같은 신산업 지원 문제만 신경쓰지 노동 재배치 문제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 정책 전환 방침에 따라 발생하게 될 실업자에 대한 전향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성희 민주노총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자동차 산업이 내연차에서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차 등으로 전환되면 자동차 유관 산업 일자리 자체의 '총 고용 규모'는 커진다는 게 정부 생각"이라며 "하지만 내연차 산업은 일자리 감소가 분명한 만큼 이들에 대한 지원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실효성 있는 일자리 교육 시스템을 갖춰야 하고 새 일자리를 찾기 전까지 공공형 일자리, 전환기 실직 임금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문호 워크인 조직혁신연구소장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옮길 수 있도록 정부가 전환 교육을 하려면 어떤 직무가 사라지고, 어떤 직무가 새로 생겨나는지 분석부터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기초 연구조차 없다"며 "일자리 전환 대응책이 부족해 기존 산업 노동자들이 변화에 저항하면 신산업을 통한 국가 경쟁력도 뒤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