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여빈은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다. '멜로가 체질'과 '해치지 않아'에서 코믹 연기를 보여주더니 '빈센조'에서 독종 변호사로 완벽 변신했다. '낙원의 밤'에서의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시한부 재연으로 분한 그는 액션 연기까지 완벽히 해냈다.
인터뷰에서도 전여빈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3일 오후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전여빈은 털털함이 느껴지는 밝은 목소리로 취재진에게 인사했다. '낙원의 밤' 속 재연의 시니컬한 성격은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 있었다.
전여빈이 있는 곳은 차 안이었다. 그는 "촬영이 많이 늦어져 지금 이동 중이다. 어쩔 수 없이 휴대폰으로 인사드리게 됐다. 얼른 스튜디오에 가서 안정적으로 인터뷰를 하겠다"며 조심스레 양해를 구한 후 '낙원의 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전여빈은 철저한 캐릭터 분석과 노력으로 재연 캐릭터를 완성했다. "재연의 심리 상태를 잘 이해하고 싶었다"며 운을 뗀 그는 "재연은 이미 많은 것을 잃었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삶에 대한 애착이 없기 때문에 두려울 게 없다. 캐릭터의 그런 상황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삶의 애착이 없는 가운데 나름의 목표는 있고, 그 이유로 총을 잘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 사격 연습을 했다"고 밝혔다.
전여빈과 함께 극을 이끈 엄태구는 낯을 가리는 성격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전여빈의 앞에서는 무장해제된다. 그는 앞서 SBS 파워FM '박하선의 씨네타운'에서 전여빈의 이야기를 하며 "절친이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전여빈은 "박훈정 감독님께서 주인공으로 엄태구 배우와 나를 캐스팅해 주셔서 감사했다. '우릴 믿어주시고 모험을 함께 해주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엄태구 배우와 나는 뜻이 같았고, 서로에게 좋은 동료가 돼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박훈정 감독은 남녀 주인공이 친분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왔다. 전여빈은 "감독님이 제주도에 있는 많은 맛집으로 데려가 주셨다. 맛집 탐방이 끝나면 커피와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곳에서 2차를 즐겼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산책을 하며 서로의 감정, 찍었던 장면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눴다.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좋은 동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낙원의 밤' 재연은 일반적인 누아르 영화 속 여주인공과 다르다. 상당히 주체적이다. 극의 마지막 부분은 재연을 위한 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취재진이 이에 대한 생각을 묻자 "만약 재연이 통상적으로 봐왔던 누아르의 여주인공이었다면 '낙원의 밤'에 출연하지 않았을 거다. 그들과 다른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꼭 재연 역할을 맡고 싶었다. '낙원의 밤'의 마지막 10분이 나한테는 출연을 결심하는 큰 계기가 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예쁜 캐릭터'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냐는 질문을 통해서는 전여빈의 가치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내가 맡았던 역할들은 모두 각각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는 게 전여빈의 생각이다. 주로 개성 넘치는 역할을 소화해왔던 그는 "누군가 봤을 때는 예쁘지 않을 수 있지만 난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확고한 가치관을 가진 전여빈. 작품을 고르는 기준도 특별할까. 이에 대한 물음에는 "작품 선택을 할 때는 오히려 단순해진다. 내게 주어진 역할이 어떤 것인지 얘기를 들었을 때 느낌이 오는 작품이 있더라. 동물적인 반응인 듯하다. 마음의 끌림이나 호기심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성장하려고 노력한다는 그는 "차승원 선배님의 재치, 이기영 선배님의 신인 같은 패기, 엄태구 배우의 집중력, 그리고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 자체가 한 발자국 나아갔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