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모욕한 현충원 사과, 與 아직 정신 못 차렸나

입력
2021.04.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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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22일 국립서울현충원 참배에서 뜬금없이 성추행 사건 피해자에게 사과한 것은 4·7 재·보선 참패 후 쇄신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오리무중에 빠진 민주당의 현 상태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누구도 선거 참패를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리저리 눈치만 보다 보니, 사과조차도 시늉만 하다가 되레 피해자를 조롱하는 듯한 상황까지 벌어진 것이다.

윤 위원장은 현충원 방명록에 “선열들이시여! 국민들이시여! 피해자님이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적었다. 당 관계자는 “보궐선거 발생 이유가 됐던 피해자를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순국 선열들에 대한 참배 자리에서 선열들과 피해자를 같이 호명하면서 사과한 것은 도무지 무슨 맥락인지 감조차 잡기 어렵다. 당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건의 피해자는 “너무나 모욕적”이라며 “제발 그만 괴롭혀주시길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이 어이없는 사과는 전날 오세훈 서울시장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피해자에게 사과한 것을 계기로 당 안팎에서 사과 여론이 비등하자 등 떠밀려 나오다 빚어진 촌극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왜 사과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반성이 없다 보니 내용도 없고 진정성도 없는 ‘끼워 넣기’ 사과를 하다 반발만 사게 된 꼴이다.

민주당은 선거 참패 후 아무런 쇄신책도 내놓지 못했다. 2030세대 의원 5명이 목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강성 지지층의 문자 폭탄이 쇄도하자 입을 닫았다. 초선의원 모임이 22일에는 당 지도부에 전하는 쇄신안을 발표했으나 당 쇄신위 구성 등 하나 마나 한 대책만 제시했다. 쇄신안을 마련해달라는 게 초선들의 쇄신안이니, 그야말로 동어 반복과 시늉밖에 없는 것이다. 강성 지지층에 둘러싸인 민주당의 당심이 얼마나 민심과 괴리돼 있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러니 성추행 사건에서도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제대로 된 사과가 나올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