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광로 1기 교체에 6조 드는데"… 산업계 "탈탄소 동의하지만 속도 조절 필수"

입력
2021.04.2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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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열린 세계 기후정상회의에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추가로 상향하겠다"고 선언하자 산업계는 한층 긴장하고 있다. 탄소 고배출 산업이 많은 한국의 경제 체제에선 만만치 않은 과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철강ㆍ정유ㆍ화학 등 전통적 탄소배출 산업은 아예 생존전략부터 새로 짜야 할 상황이다. 재계에서는 정부의 확실한 지원대책과 함께 감축의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발등에 불 떨어진 산업계

2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는 유엔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7년 대비 24.4% 감축하겠다"고 통보했다. 여기에 문 대통령이 "올해 안에 이 목표치를 추가로 상향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제조업이 적지 않은 우리 산업 특성에서 온실가스 감축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정점을 찍고 2019~2020년 10%가량 줄었지만 이미 1990년대부터 온실가스 감축을 시작한 유럽과 비교하면 한참 뒤처진다. 산업계는 탄소중립 전환에만 수백조 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철강업계는 대표적인 위기 업종이다. 철강생산에 필수인 고로(용광로)는 특히 탄소배출이 많은데, 교체 비용이 막대하다. 업계는 고로 1기를 탈탄소 설비로 바꾸는 데만 5조9,0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의 연간 영업이익 대부분을 30여 년간 쏟아부어야 전체 설비(고로 9기)를 개선할 수 있는 것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NDC가 상향 조정되면 탄소배출권 구매 비용만 한 해 수천억 원이 들어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발전업계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주축이던 석탄발전 대신 가스복합 발전, 신재생에너지 등으로 제때 사업 전환을 하지 못하면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정유업계와 시멘트, 전기전자 분야 주요 대기업 역시 부담을 토로한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석탄화력 폐지에 대한 합리적 인센티브를 제공할 정책과 함께 효율적으로 신사업 전환에 나설 수 있도록 파격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자금부족 중소기업은 더 막막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더 암담한 상황이다. 지난 2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조사에 따르면, 탄소중립 준비가 되어 있거나 준비 중인 기업은 15.1%에 불과했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NDC 상향에는 동의하지만 이행 속도가 문제”라며 “완성차나 대형 부품사는 나름의 준비를 하겠지만 2, 3차 협력사의 경우 기술 개발 투자도 빠듯해 정부 기준을 맞추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권은 정부의 ‘탈석탄’ 기조에 일찌감치 대비해 와 큰 부담은 없다는 분위기다. 지난해부터 금융지주사들은 탄소중립에 초점을 맞춘 ‘탈석탄 금융’을 선언해 왔다.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경제 활력 및 일자리 창출에 큰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며 “향후 탄소중립 정책 추진 과정에서 이러한 현장의 애로를 충분히 반영해 경제계와 적극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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