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기생충' 꿈꾸는 '미나리', 오스카서 어떤 영화들과 맞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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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2 18:23

한국어 영화로는 두 번째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미나리’가 지난해 ‘기생충’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26일(한국시간) 열리는 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우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이 점쳐지는 가운데 ‘미나리’가 얼마나 많은 트로피를 받게 될지도 관심을 모은다. ‘미나리’가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건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음악상 등 총 6개 부문. 수상자 예측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는 윤여정을 제외하면 다른 부문에선 유력 후보들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미나리'가 경쟁하는 상대는 어떤 작품일까.

올해 오스카 작품상 후보는 총 8편이다. 8편 모두 국내 극장에서 개봉했거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공개됐다. 작품의 면면은 다양하다. 미국 금융위기 후 급증하고 있는 유목민의 삶을 통해 미국 사회의 이면을 엿보는 ‘노매드랜드’를 필두로 1960년대 말 비민주적인 정부와 혁명가들의 대립을 그린 두 편의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오슨 웰스의 걸작 ‘시민케인’ 제작 뒷이야기를 다룬 ‘맹크’, 페미니즘 복수 스릴러 ‘프라미싱 영 우먼’, 치매를 보호자가 아닌 환자의 관점에서 풀어낸 ‘더 파더’. 청력을 잃은 록 밴드 드럼 연주자의 역경을 간접 체험케 하는 ‘사운드 오브 메탈’ 등이 작품상을 놓고 경쟁한다.

작품상 경쟁에서 가장 앞서는 영화는 ‘노매드랜드’다. 골든글로브와 영국 BAFTA를 비롯해 40여개가 넘는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유목민이라는 미국 내 소수자를 그리면서도 미국의 일그러진 경제 시스템을 꼬집고 2008년 금융위기가 미국 사회에 미친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읽어낸다. 영화는 실제로 유목민의 삶을 사는 사람들뿐 아니라 삶의 터전이나 일자리를 빼앗겨 사실상 유목민과 다름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까지 아우른다. 르포르타주에서 시작한 영화는 한 인물의 로드무비이면서 미국 사회에 대한 보고서이고 한 편의 긴 시이기도 하다. 오스카 수상자 예측 사이트에서 ‘노매드랜드’가 압도적인 차이로 작품상 및 감독상 수상 후보 1순위로 꼽히는 이유다.

원작이 있는 ‘노매드랜드’가 각색상 후보에 오르면서 ‘미나리’는 각본상을 놓고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프라미싱 영 우먼’과 경쟁하게 됐다. 여우조연상에 이어 ‘미나리’가 수상할 가능성이 높은 부문으로 꼽히긴 하지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특히 미국 작가조합 각본상 수상작인 ‘프라미싱 영 우먼’이 강력한 오스카 수상 후보로 꼽힌다. 학창 시절 성폭행을 당한 친구 대신 가해자에게 복수하려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는 이 작품은 기존의 복수극과 차별화한 탄탄한 각본과 예상을 뒤집는 사건 전개, 개성 강한 인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로맨스 영화의 고전적 문법을 뒤틀면서 남성 중심적인 세계를 비판하는 서사 구조도 칭찬할 만하다.

남우주연상은 여느 해보다 경쟁이 치열하다. ‘맹크’에서 ‘시민 케인’의 술주정뱅이 시나리오 작가 허먼 맨키비츠를 실감나게 연기한 게리 올드먼이 후순위로 밀릴 정도다. 스티븐 연이 경쟁해야 할 주요 상대 배우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의 채드윅 보즈먼과 ‘더 파더’의 앤서니 홉킨스다. 미국의 1세대 블루스 가수 마 레이니의 음반 녹음 과정을 그린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흑인 음악을 넘어 흑인의 역사까지 다루는 영화. 재능 있는 트럼펫 연주자 레비 역을 맡은 보즈먼은 암 투병 중에도 변화무쌍한 감정의 곡선을 타는 레비를 넘치는 에너지로 소화해내 극찬을 받았다. 치매에 걸린 노인을 극사실주의로 연기해 관객에게 치매를 간접 체험케 하는 앤서니 홉킨스도 강력한 수상 후보로 꼽힌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현지 전문가들은 사실상 윤여정을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만큼 경쟁자들과 격차가 크다는 뜻이다. '힐빌리의 노래'에서 거칠고 강인하지만 손주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할머니로 변신한 노장 글렌 클로스, '보랏 서브시퀀드 무비필름’에서 사차 바론 코헨의 딸로 출연한 불가리아 출신의 신예 마리아 바칼로바가 라이벌로 꼽힌다.

에밀 모세리는 ‘미나리’로 처음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올랐다.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황무지 같은 시골에서 농장을 일구는 주인공들의 복합적인 심리를 대변한 에밀 모세리의 음악은 호평을 받았지만 수상에 이르려면 높은 벽을 하나 넘어야 한다. 바로 ‘소울’과 ‘맹크’의 음악을 맡은 트렌트 레즈너, 애티커스 로스 콤비다. 특히 ‘소울’은 ‘태어나기 전 세상’이라는 상상의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 레즈너, 로스의 음악과 재즈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주인공의 연주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존 바티스트의 음악까지 더해져 음악상 부문 1순위 후보로 지목 받고 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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