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다니는데 법명 5개... 비정규직 수기 쓴 '빈센조' 스님의 비밀

입력
2021.04.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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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째 스님 역만" 배우 리우진

편집자주

훗날 박수소리가 부쩍 늘어 문화계를 풍성하게 할 특별한 '아웃사이더'를 조명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반야심경' 독경 소리가 어두운 법당에 맑게 울려 퍼진다. 정좌를 한 채 목탁을 치던 적하 스님은 꼭 세상의 번뇌란 번뇌는 모두 짊어진 모습이다. ''찐스님' 인가요?' tvN 코믹 누아르 드라마 '빈센조'에서 혼자서만 진지해 유독 튀는 적하 스님을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엔 이런 글이 요즘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조계종서 옷도 지원

극 중 빈센조(송중기)에 깨달음을 주는 난약사의 큰 스님은 배우 리우진(51). 그가 들려준 스님 찰떡 연기의 비결은 이랬다. "스님 역만 6년째거든요. 효신 스님께 목탁 치는 법도 배우고요." '빈센조' 촬영 중 짬을 내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을 찾은 리우진의 말이다.

그의 '스님 인생'은 2015년 연극 '돌아온다'에서 스님 역을 맡으면서부터 시작됐다. '빈센조' 출연도 캐스팅 감독이 우연히 이 연극을 보고 이뤄졌다. 그는 드라마 '명불허전'(2017)을 비롯해 '조선생존기'(2019), '한 번 다녀왔습니다'(2020) 등에서도 줄줄이 스님으로 나왔다. 그래서 6년째 삭발한 채 머리를 기르지 못한다. '스님 전문 배우'에 조계종은 처음으로 법의인 가사와 장삼까지 지원했다.




"중학생 때부터 교회 가" 십자가 멘 스님 배우

반전은 따로 있다. "저 매주 예배드립니다, 중학생 때부터 교회 다니거든요." 40여 년을 기독교 신자로 산 그는 "법운, 사명 등 (극에서 쓴) 법명만 다섯 개"다. 그런 배우는 '빈센조'에서 스님 옷을 입고 그의 키보다 큰 십자가를 짊어진 채 상가 인근을 걷는다. 리우진은 "종교 간 화합의 메시지"라고 했다.

리우진의 삶도 평범하진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 전공(노어노문)을 살려 1997년 대기업에 입사한 그는 1년 반 만에 회사를 뛰쳐나왔다. 대학 동아리 때부터 해 오던 연기에 대한 열망 때문. 결국 그는 대학로로 갔다. 극단 한양레퍼토리와 뚱딴지 등을 거쳐 연극 '세자매' '라이방' 등의 무대에 섰고, 프로젝트 극단 '연애시절'을 꾸려 스페인 연극 '최종면접'을 번안, 연출까지 했다.

연극계 팔방미인이었지만, 생활은 고단했다. 영화사 100곳에 오디션 프로필을 보내면 고작 1~2곳에서 연락이 왔다. 밥벌이를 위해 지하철 택배부터 전단 배포, 호텔 접시 닦는 일, 인쇄 공장 책 포장 아르바이트 등을 닥치는 대로 했다. 반년 넘게 설 공연도 없고, 단역이라도 불러주는 촬영장도 없었다. 4년 전엔 건설 현장도 뛰었다.

'허리는 끊어질 듯하고 다리도 뻐근하다. 나의 노동으로 오늘 3만1,500원을 벌었다. 골목에서 담배 한 대를 피웠다. 하얀 담배 연기가 하필 눈에 들어가서 눈꼬리가 살짝 젖어버렸다'. 그는 '빈센조' 촬영을 하던 지난겨울, 이렇게 휴대폰 메모장에 옛 막노동 일기를 썼다. 그가 쓴 노동기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주최한 '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에서 우수작으로 선정, 한 일간지에 두 차례에 걸쳐 올초에 실렸다.

"야간 일을 하면, 두 배로 줬어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갔죠. 땀이 엄청나게 흘러 여름엔 소금 먹으면서 일하고요."


대기업 뛰쳐나와 건설현장까지

하지만 리우진은 "지난해 택배 노동자 한 분이 돌아가셨잖나"라며 "어떤 소설가가 '줄줄이 스러져가는 다른 노동자에 대한 언급 없이 나만 생각하는 이야기가 아쉬웠다'고 한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고 부끄러워했다. 그의 시선은 유리창 너머 남대문으로 향했다. "저 수문장 교대 아르바이트도 했었는데... 단역 배우들, 종종 하거든요."

극중 적하 스님은 "번뇌는 깨달음의 영역이 아니라 싸움의 영역"이라고 했다. 깨닫기 위해선 치열하게 싸워야한다는 뜻이다. 리우진은 이날 서울시극단 후배 연기자들에 인문학 강의를 하고 왔다. 그런 그는 성도 '이'가 아닌 '리'를 쓴다. 영화 '올드보이' 이우진(유지태)을 비롯해 이우진이란 이름이 너무 많아 일부러 '리'우진으로 활동한단다. 그는 "사람들이 자꾸 새터민이냐, 언제 내려왔냐고 묻는다"며 웃었다. 엉뚱함의 끝은 어디일까. 배우는 내달 연극 '헬로우 미스 미스터'에 출연하고, 연말엔 '최종면접'을 다시 올린다. 머리카락 기르는 일은 "당분간 포기" 했다.

"탭댄스나 차차차, 춤을 배우고 싶어요. 버킷리스트이기도 하고, 몸을 좀 유연하게 쓰고 싶거든요. 요즘 제 화두는 관계예요. 늘 해탈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아직 멀었죠."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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