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칸 주차', '길막 주차' 등 이른바 '민폐 주차'를 하면서도 "차에 손대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며 적반하장 격인 차주들이 온라인에서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논란은 17일 2칸 주차하는 벤츠 사진이 자동차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올라오면서 시작됐는데요. 벤츠 차주는 비매너 주차로도 모자라 '제 차에 손대면 죽을 줄 아세요. 손해배상 10배 청구합니다'라는 협박성 글까지 남겨, 커뮤니티 사용자들은 "너무 당당해서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후 "나도 당했다"며 각종 인증글이 쏟아지는 와중, 19일엔 한 벤틀리 차량의 갑질 주차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인천 도화동 e편한세상 6-1단지 입주민이라고 밝힌 글 작성자는 "방문 차량으로 등록도 안 된 외부 차량이 주차 자리가 부족하다며 차량 진입로를 막아서 주차한다"고 성토했는데요.
해당 벤틀리는 진입로 주차는 물론, 차 머리를 주차선 밖으로 남겨 다른 차량의 통행을 방해하는가 하면 떡하니 경차 전용 2칸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작성자는 "주차 경고 스티커를 붙이자 차주가 되레 욕설을 퍼부었고, 결국 경비원 두 분이 젊은 사람에게 욕먹어가며 직접 스티커 제거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명품차를 타고 다닌다고 사람이 명품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저 몰상식한 사람 때문에 고통받는 입주민과 경비원분들을 위해 통쾌한 해결과 조치가 시급하다"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비매너 주차로 이웃들이 골머리를 썪는 일은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러나 '아파트 주차장에서의 비매너 주차에 법적 제재를 가하기란 어렵다'는 말에 신고를 포기하는 경우도 다반사였습니다.
주·정차 방법 및 시간을 제한하거나(도로교통법 제34조) '주·정차할 때 다른 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규정(도로교통법 시행령 제11조 1항 3호)은 있지만 아파트 주차장은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니기 때문에 해당 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죠.
도로교통법상 도로는 현실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 또는 차마(車馬)가 통행할 수 있도록 공개된 장소로서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장소로 규정되는데요.
대법원은 이를 근거로 2017년 "아파트 주차장이 관련 용건이 있는 사람만 이용할 수 있고, 경비원 등이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곳이라면 도로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렇다고 민폐 차주 처벌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2칸 또는 3칸 주차의 경우 '업무방해죄'가 성립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즉, '차량이 주차 공간을 이중삼중으로 차지해 아파트 관리사무소 혹은 주차관리업체의 업무를 방해했다'며 고소 또는 고발할 수 있다는 겁니다. 법원이 민폐 차주의 업무방해(형법 314조)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됩니다.
그중 소화전 앞에 주차를 하는 차량은 업무방해뿐만 아니라 소방기본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소방기본법 제50조 4호는 '정당한 사유 없이 소방용수시설 또는 비상소화장치를 사용하거나 그 효용을 해치거나 정당한 사용을 방해한 사람에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상습범이라 하더라도 '뚜렷한 고의를 갖고' 타인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을 입증하긴 쉽지 않다"며 업무방해죄 성립이 어렵다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인천 벤틀리같이 길막 주차를 하는 경우 도로교통법 적용은 어렵더라도 형법 185조의 '일반교통방해' 혐의를 적용할 여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육로, 수로 또는 교량을 손괴 또는 불통하게 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교통을 방해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인데요.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하려면 아파트 주차장이 '육로'로 인정받아야 하는 게 관건입니다. 대법원은 1988년부터 육로를 '일반공중의 왕래에 공용되는 육상의 통로를 널리 일컫는 것으로서 부지의 소유관계나 통행권리관계 또는 통행인의 많고 적음 등을 가리지 않는다'며 '다수인이 통행하는 공간'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다수인이 통행하는 공간인 아파트 주차장 역시 육로로 볼 수 있고, 그에 따라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건데요.
교통 관련 사건을 주로 맡아 온 정경일 변호사는 "다툼의 여지는 있지만,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공간을 통행하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에 일반교통방해죄가 성립할 여지도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두었습니다.
민폐 차주에게 업무방해죄와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실제 처벌받은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인천 캠리' 사건입니다. 2018년 8월 인천 송도국제도시 한 아파트 단지에서 '관리사무소가 차량에 불법주차 경고스티커를 붙여 화가 난다'며 7시간가량 지하주차장 입구를 차량으로 막고 사라진 사건인데요.
해당 차량의 50대 차주는 업무방해 및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기소됐고 같은 해 12월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차주가 차량을 이동시키지 않아 아파트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고 주민들이 직접 차량을 옮기기까지 해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도 "사건 발생 나흘 뒤 자필 사과문을 써 아파트 게시판에 붙였고,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과 관리사무소장이 처벌을 원치 않는 점을 감안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처럼 아파트 주차장 민폐 차량에 업무 방해나 일반교통 방해가 적용되면, 도로에서의 민폐 주차보다 훨씬 무거운 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도로에서의 불법 주차는 2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 과료가 부과되는데 비해, 업무방해와 일반교통방해죄엔 징역형까지 선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참교육'을 하겠다며 민폐 차량 옆에 바짝 붙여 주차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오히려 재물손괴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대법원은 '일시적으로 그 재물을 이용할 수 없는 상태'까지 재물손괴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정 변호사도 "차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차가 움직이지 못하게 막으면 그 효용 가치를 훼손했다고 보아 재물손괴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