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6시 30분 회사로 출근해 40분 동안 소설을 썼다. 이전에 소설을 써본 적은 없었지만,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그렇게 쓴 글을 매일 7시 30분에 개인 블로그에 올렸고, 한 달 만에 200만 명이 이 소설을 봤다.
11년 차 대기업 직장인 송희구(38)씨는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13일까지 블로그에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연재했다. 말 그대로 서울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대기업에 25년째 근무 중인 김씨 성의 부장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김 부장 외에도 최 부장과 송 과장, 상무, 전무 등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희비는 모두 부동산 투자 성패에 달려 있다. 누구의 집값이 가장 많이 올랐는지가 이들의 궁극적인 계급을 결정한다.
최근 이 화제의 소설을 쓴 송씨와 전화 통화로 만났다. 송씨는 “김부장은 우리 회사의 실제 인물 셋을 조합해 만든 캐릭터"라며 “세 명 중 한 명이 이상한 부동산을 사는 걸 보고 답답한 마음에 쓰게 된 소설”이라고 말했다.
소설에서 김부장은 전형적인 ‘꼰대’다. 주변의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고, 독단적인데다가, 오만하기까지 하다. 이런 김부장의 성정은 자연히 부동산 투자 실패로 이어진다. 결국 승진에서 밀리고 지방으로 좌천된 김부장은 명예퇴직을 선택하고, 이 퇴직금으로 상가에 투자를 했다가 큰 손실까지 본다.
“처음부터 소설을 쓸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직장 상사들을 보며 ‘저분들은 왜 저러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들이 보고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이야기를 써나가기 시작했죠. 소설 형식을 택한 건 그렇게 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것 같았거든요.”
‘우리 회사 부장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쓴 소설을, 일반 독자들까지 이정도로 열광하며 읽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부동산 투자 카페와 직장인들의 채팅방으로 퍼지면서 200만 명이 봤다. “극사실주의 부동산 소설”이라거나 “직장인 아포칼립스”라는 찬사가 대부분이었지만, 부동산 투자 성과로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이분법적 접근이 거북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송씨는 “내가 상대적으로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 소재로 삼긴 했지만, 소설에서 벌어지는 많은 나쁜 결과는 김부장이 주변의 조언에 귀 기울였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라며 “소설의 요지는 열린 마음으로 살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변 부장님들을 보면 대부분 회사에 목을 매요. 그러다 보니 여유가 없어지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게 되죠. 하지만 회사라는 건 기본적으로 불합리해요. 그러다 보니 상실감, 노후에 대한 불안이 뒤따를 수밖에 없어요. 지금의 MZ 세대가 이런 부장님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 아마 저와 비슷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소설에 공감한 것 아닐까요?”
소설은 영상화 논의 중이고, 김부장 외의 다른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후속편도 기획 중이다. 구체적인 출판 계획도 있다. 회사에 목매지 않고, 자신의 투자 안목을 믿으며,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은 바로 이 ‘송과장’ 세대가 ‘김부장’ 세대에게 남기는 결별 선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