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으로 뒤덮인 해변,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새. 플라스틱이 자연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새롭게 등장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있다. 바로 ‘플라스틱 산’이다. 최근 재활용업체들은 처리되지 않고 쌓여만 가는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코로나19로 배달과 테이크아웃이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 잡으며 플라스틱 사용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환경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국내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된 지난해 상반기 플라스틱 쓰레기가 전년 동기 대비 15.6% 증가했다. 2016년에 이미 국내 1인당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이 세계 3위였는데, 코로나19가 그야말로 ‘불에 기름을 부어버린 꼴’이다. 과연 국민들은 플라스틱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으며, 플라스틱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을까. 또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의 해결방법은 무엇인가.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팀은 지난 3월 5~8일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 10명 중 8명은 플라스틱이 필요보다 많이 사용되고 있다(86%)고 답했다. 또 대다수는 현재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심각(96%)하며, 코로나19 이후 심각(95%)해졌다고 인식했다. 59%는 앞으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 답해 전망 역시 비관적이었다.
실제로 플라스틱을 얼마나 자주 사용하고 있는지도 알아보았다. 39%는 물티슈를, 29%는 비닐봉투를 매일 한 개 이상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외출 필수품이 된 일회용 마스크의 경우, 매일 사용한다는 응답이 35%에 달했다(※합성섬유로 만든 물티슈, 폴리프로필렌 등으로 만든 일회용 마스크는 모두 플라스틱으로 분류된다). 테이크아웃과 배달의 기반이 되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 음식용기를 매일 사용한다는 답은 각 17%, 16%로 약 10명 중 2명꼴이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마스크와 음식용기 사용량이 증가한 것이 확인됐다. 75%는 코로나19 이후 마스크 사용이 늘었다고 답했으며, 절반(50%)은 일회용 음식용기를 더 많이 사용했다고 답했다. 물티슈와 비닐봉투, 음료·생수병, 일회용 컵 등에 대해서는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는 응답이 45~50%로 가장 많았으나, 증가했다는 응답이 30~40%로 총량적으로는 코로나19 이후 소비되는 일회용 플라스틱 개수가 증가했다.
사람들은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의 가장 큰 원인으로 플라스틱 상품을 만들고, 플라스틱 포장재를 사용하는 사업체를 지목했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 물은 결과, 사업체의 과대포장 및 과다사용이 원인이라는 답이 73%로(생산·유통업체 47%+소매점·음식점 26%) 개인의 과다한 사용(12%) 및 정부 정책 미흡(11%)보다 훨씬 높았다. 같은 맥락에서 10명 중 8명은 제품의 플라스틱 포장재가 과도하다(79%)고 인식했으며, 46%는 소비 시 비플라스틱 제품을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사업체가 플라스틱 쓰레기 저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응답 역시 낮았다. 소매점·음식점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응답은 24%, 생산·유통업체가 노력한다는 응답은 30%로 하위권이었다. 이는 본인이 노력한다는 응답(84%)은 물론, 타인(48%) 및 중앙정부(47%)가 노력한다는 응답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낮은 노력도 평가와 달리 사업체의 노력에 대한 기대감은 상당했다. 10명 중 5명이 생산·유통업체, 소매점·음식점의 노력이 플라스틱 쓰레기 저감에 매우 효과가 있을 것이라 응답했다. 저감 노력과 기대 효과를 종합해 살펴볼 때, 사업체의 플라스틱 쓰레기 저감 노력이 현재는 부족하지만 노력할 경우 큰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기업에게 기대하는 플라스틱 저감 노력은 무엇일까. 과대포장 자제 및 친환경 자재 사용이 44%로 1순위였고, 재활용 기술 개발 및 재사용 방법 다양화(20%)가 뒤를 이었다. 국민이 사업체의 플라스틱 저감 노력을 요구하는 흐름 속에서 기존의 플라스틱 제품 생산 및 플라스틱 사용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 결과가 사업체만의 노력을 촉구하는 것은 아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플라스틱 쓰레기 저감 노력이 매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응답 역시 각각 47%로 사업체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높았다. 환경보호 정책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응답도 81%로 높아, 정책을 시행하는 당사자인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정부가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해 규제 및 지원 정책을 더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도 우세했다. 정부가 기업의 플라스틱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는 데에는 84%가 동의하였고, 플라스틱 감축 노력을 한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에도 86%가 찬성했다. 업체뿐만 아니라 개인의 플라스틱 사용을 정부가 규제해야 한다는 데에도 68%가 공감했다.
10명 중 8~9명은 정부가 2022년부터 시행하는 주요 플라스틱 규제 정책에 따르겠다고 답변해 높은 수용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 중 ‘적극적으로’ 따르겠다는 답변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특히 상당한 불편함이 우려되는 매장 일회용 컵 보증금(28%), 모든 매장에서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 금지(27%), 50인 이상 숙박시설 및 세척시설 갖춘 장례식장의 일회용품 사용 제한(22%)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따르겠다는 답변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정책이 시행된다면 따르겠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삶에서 실천하겠다는 의지는 아직 부족한 것으로 해석된다. 플라스틱 규제를 수용하기 어려운 이유가 ‘불편하다고 여겨져서’(45%), ‘현실적으로 정착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44%)가 다수임을 고려할 때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원활한 정착을 위한 적극적인 홍보와 환경 조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50년까지 우리나라를 탈플라스틱 사회로 전환하겠다고 지난해 12월 발표했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29년 후에는 우리가 손쉽게 사용하는 석유계 플라스틱은 자취를 감추고, 바이오 플라스틱이나 종이, 유리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기업, 정부 그리고 국민 모두가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시작해야 할 때다.
신하은 한국리서치 여론1본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