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지 않을수록 뜬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얘기다. 윤 전 총장은 최근 여론조사마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두 자릿수 지지율에 진입한 지난해 11월을 기준으로 하면 다섯 달째, 이재명 경기지사와 1, 2위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올해 3월을 기준으로 하면 두 달째 '윤석열 현상'이 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통 정치 문법과 달리 지역을 순회하지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나타나지 않는데도 윤 전 총장의 존재는 '조용하게' 묵직하다. 그가 여의도와 거리를 둘수록, 메시지를 최소화할수록 민심의 환호가 커지는 건 왜일까.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은 지난해 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 국면 때 한 차례, 지난달 검찰총장 사퇴 이후 또 한 차례 뛰어올랐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추미애·윤석열 갈등'이 정점으로 치달은 지난해 11월 둘째 주 지지율이 11%에 진입했다. 올해 3월 초 검찰총장 사퇴 직후 이재명 지사와 동률인 24%를 찍은 데 이어 지난주(4월 2주 차) 조사에선 25%로 이 지사(24%)와 본격적인 1, 2위 다툼을 시작했다.
윤 전 총장 지지율은 중도층과 충청 유권자들이 떠받치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중도층 가운데 윤 전 총장 지지율은 2020년 11월 2주 차 11%에서 2021년 4월 3주 차 30%로 뛰었다. 윤 전 총장에게 대망론을 투영한 충청권의 지지율 역시 같은 기간 9%에서 27%로 증가했다. 서울에서도 12%에서 28%로 늘었다. '스윙보터'이자 '캐스팅보터' 유권자들이 윤 전 총장을 밀고 있는 셈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윤석열'에 지지가 몰리는 현상은 기성정치에 대한 중도층의 실망이 만든 것이다. 4·7 재·보궐선거 이후에도 지지율이 꺾이지 않는 건 '민주당을 계속 심판하고 싶은 민심'과 '국민의힘은 여전히 아니라는 민심'이 윤 전 총장을 당장의 대안으로 보고 가산점을 준 결과다.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이후 윤 전 총장의 '정치적 활동'은 거의 없었다. 이따금 언론과 전화 인터뷰로 '짧은 소회'를 밝힌 정도다. 직접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2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사전투표 때가 유일하지만, 윤 전 총장은 별다른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지난 11일 노동·복지 전문가인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를 만나 정책 조언을 들은 사실이 측근의 입을 통해 뒤늦게 공개됐다.
'정치하지 않는 정치인'이라는 점이 현재 윤 전 총장의 매력 포인트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윤석열 현상'은 윤 전 총장이 제도권 정치와 손잡는 순간 꺼질 가능성이 있다. 2007년 고건 전 국무총리와 2017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정치권 밖에서 기대주로 급부상했지만, 제도권 정치에 발 들인 순간 사그라들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여권 대선주자들이 새로움을 잃은 상태에서 윤 전 총장은 '신선함'을 갖고 있다. 새로움에 대한 갈증이 있는 유권자들의 요구를 채워주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현상'의 뿌리가 의외로 튼튼하다는 시각도 있다. 그가 선점한 '공정'과 '정의'의 이미지가 시대정신과 부합한다는 점에서다. 윤 전 총장이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강하게 비판해 온 정승국 교수를 찾아가 만난 것도 이런 점을 의식해서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