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도 지갑 여는 中.... '하이난' 글로벌 명품시장 중심지로

입력
2021.04.20 04:30
경기 침체에도 중국 명품 시장 급성장
中 내수시장 확대 위해 규제 완화 조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려도 중국 명품족의 지갑은 마를 날이 없다. 해외 여행을 못 가도 넓은 땅덩이에서 돈 쓸 곳은 얼마든지 있다. 요즘엔 남부 휴양지 ‘하이난’이 글로벌 명품시장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내국인에게도 면세 쇼핑을 허용하면서 자국 관광객들이 대거 몰려든 까닭이다.

‘큰손’이 움직이자 명품 브랜드들은 앞다퉈 투자에 나섰고, 내수 활성화가 급한 중국 정부도 규제 완화로 호응했다. 베르사체 등을 소유한 존 D 아이돌 카프리홀딩스 대표는 “하이난이 불타고 있다”는 말로 뜨거운 쇼핑 열기를 대변했다.

1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 보도를 보면 지난해 하이난 면세점 매출은 300억위안(5조1,380억원)으로 2019년보다 두 배나 급성장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7월부터 하이난 면세 쇼핑 연간 한도를 3만위안에서 10만위안(1,700만원)으로 3배 늘리고 품목당 8,000위안(137만원)이었던 가격 제한 규정을 폐지한 게 결정타였다. 코로나19로 억눌린 소비 욕구는 곧장 ‘보복 소비’로 이어졌고, 하이난 면세점 7곳 중 4곳을 운영하는 중국 면세점 기업 중국국영면세품그룹(CDFG)은 지난해 세계 1위 면세점으로 우뚝 섰다.

돈 냄새에 민감한 명품 브랜드들이 이런 호기를 놓칠 리 없다. 루이비통과 디올 등을 거느린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올해 1월 하이난 유명리조트와 제휴를 맺고 미션힐즈 면세점을 출점했다. 또 일본 화장품업체 시세이도는 올해 말까지 하이난에 매장을 지금보다 두 배 많은 6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중국 정부의 지원 사격도 든든하다. 이 참에 약 2조위안(342조5,4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해외 소비를 국내로 돌리겠다는 의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내달 7~10일에는 하이난에서 전 세계 60여개국 1,000여개 브랜드가 참여하는 ‘명품 브랜드 무역 박람회’도 개최한다. 글로벌 금융기업 UBS는 2025년까지 하이난 면세시장이 매년 40%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면세시장이 활황을 맞으면서 중국 명품시장 덩치도 커졌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의 명품 구매는 3,500억위안(59조9,445억원)에 달했고, 글로벌 시장 점유율 역시 2019년 11%에서 20%로 두 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전체 시장 규모가 25% 감소한 것과 확연히 대조된다. LVMH는 올해 1분기 아시아 매출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보다 외려 26% 증가했는데, 중국의 엄청난 구매력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베인앤드컴퍼니는 중국의 세계 명품시장 점유율이 2025년엔 절반에 가까운 46~48%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3% 증가하는 등 중국 경제의 나홀로 고공행진도 명품시장의 전망을 밝게 한다.

물론 업체 입장에서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중국에선 국영기업과 도매계약을 체결해야 면세시장 진출이 가능하다. 직영이 불가능한 탓에 투자처로서 위험 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장 자크 기오니 LVMH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중국 소비자들이 명품을 대량 구매한 뒤 중개인에게 되파는 사례가 많다”며 “하이난 면세시장이 회색시장의 중심지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표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