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지도 내치지도 못하는, 美 바이든 '난민 딜레마'

입력
2021.04.19 05:00
집권 뒤 감당할 수 없이 밀려드는 이민 대열에
취임 뒤 곧장 인정 확대 약속하고도 우물쭈물
트럼프 정부 수준 수용 인원 유지하려다 역풍

이민자를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는다며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몰아붙였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현실의 벽’ 앞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다. 막상 닥쳐 보니 반기기만 했다가는 지금도 감당하기 힘든 이민 규모가 더 불어날 게 뻔한데 그렇다고 이제 와 내치자니 위선자로 몰리기에 딱 좋은 상황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6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회계연도의 난민 수용 인원을 역대 최저 수준인 1만5,000명으로 제한하는 ‘긴급 재가’에 서명했다. 트럼프 정부가 지난해 9월 축소해 설정한 규모를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난민 수용은 특정 사유로 인해 사전에 미국 망명을 요청한 사람을 심사한 뒤 받아들이는 절차다.

이는 한껏 부푼 잠재적 이민자의 기대감에 수위를 조절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대선 당시부터 트럼프 정부가 망가뜨린 이민법을 개혁하겠다고 공언해 온 바이든 대통령은 올 1월 취임한 지 약 2주 만에 미국의 난민 수용 인원을 6만2,500명으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미국ㆍ멕시코 국경을 넘으려는 미국행 중남미 캐러밴(이민 행렬)이 폭증했다. 지난달 국경에서 붙잡힌 불법 이민자 수(17만1,000명)가 15년 만에 가장 많았을 정도다. 소식통은 로이터에 “이런 시기에 난민 수용을 늘릴 경우 미국이 너무 열려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게 바이든 대통령의 우려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가일로인 미성년 이민자는 특히 문제다. 전월 두 배에 육박하는(1만8,800명) 미성년자가 지난달 보호자 없이 국경을 넘었는데, 혼자 온 미성년자는 본국으로 돌려보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성년자 국경 수용소는 포화한 지 오래다. 미성년자를 3일 이상 수용할 수 없는 곳에 어린이가 한 달 넘게 머물며 대기해야 한다. 모든 게 임시방편인 터라 감염병 예방을 위한 ‘거리 두기’는커녕 아예 보건 위생이 불가능하다는 게 이민구호단체 전언이다. 미 보건복지부가 17일 텍사스주(州) 휴스턴시의 단독 이민 10대 소녀 수용소를 폐쇄하고 450여 명을 다른 시설로 옮긴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러나 형편을 핑계로 소신과 신의를 저버리기도 쉽지 않은 노릇이다. 수용 인원을 그냥 놔두겠다는 후퇴 선언이 역풍에 직면하는 건 자연스럽다. 당장 여당인 민주당에서 딕 더빈 상원의원 등의 비판이 제기됐고 인권 단체들도 국경 근처에 10만 명에 이르는 난민이 표류 중이란 사실을 감안할 때 온당치 못한 조치라고 반발했다.

백악관은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젠 사키 대변인이 성명을 통해 “최종 수용 인원이 정해지는 건 5월 15일”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당초 바이든 대통령의 목표치인 6만2,500명까지 늘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부연했다.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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