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접종은 각종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가장 확실한 방패다. 하지만 백신 종류와 권장 시기가 제각각이어서 놓치기 쉽다. 특히 어린 자녀의 예방접종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정작 자신의 예방접종은 간과하기 쉽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예전에 걸렸던 감염병이 다시 활성화하거나 새로운 감염병에 걸리기 쉽다
4월 마지막 주(25~30일)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예방접종주간이다. 우리 정부도 국가예방접종(NIP)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예방접종을 꺼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이 가장 중요하지만 다른 감염병을 막을 수 있는 예방접종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방백신은 생백신과 사백신으로 구분된다. 생백신은 살아 있는 바이러스나 세균을 약독화(弱毒化)해 독성을 제거한 백신이다. 하지만 생백신은 살아 있는 병원균이므로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접종하다간 해당 병원균에 감염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면역력이 떨어졌다면 예방접종을 늦추는 것이 좋다. 현재 생백신으로는 대상포진ㆍ수두ㆍ홍역ㆍ유행성이하선염ㆍ풍진ㆍ황열ㆍ결핵ㆍ경구용 장티푸스ㆍ비강 투여용 인플루엔자 백신 등이 있다.
사백신은 바이러스ㆍ세균을 배양한 후 열이나 화학약품으로 병원균을 비활성화시킨 백신이다. 생백신과 달리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면역 반응이 약해 여러 번 접종해야 한다. 폐렴구균ㆍA형 간염ㆍB형 간염ㆍ백일해ㆍ파상풍ㆍ기타 인플루엔자 백신 등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백신 접종의 면역력은 점점 떨어진다. 이 때문에 건강한 성인이라도 추가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성인 백신 접종률은 미미하다.
2013년 기준 19세 이상 DTaP 백신 접종률은 7.3%, 19~26세 여성 인유두종바이러스(HIV) 백신 접종률 28.7%, 19세 이상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률은 34.3%에 불과했다. 많은 성인이 영ㆍ유아 시기에 예방접종을 끝냈다면 추가 접종이 필요치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20~30대 젊은 층은 A형 간염 예방접종을 고려해야 한다. A형 간염 환자 가운데 70% 정도가 20~30대다. 이 연령대가 A형 간염에 약한 이유는 위생적인 생활환경으로 인해 어린 시기에 A형 간염 바이러스에 노출될 기회가 적어서다.
또한 20~30대가 영ㆍ유아 시기에 A형 간염 백신이 필수 예방접종으로 지정되지 않아 20~30대에서 A형 간염 항체 보유율은 10~20% 정도로 낮기 때문이다.
여성이 챙겨야 할 예방접종도 있다. 미혼 여성은 자궁경부암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좋다.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접종으로 자궁경부암의 80~90%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신을 계획 중인 여성은 백일해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신생아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백일해는 부모를 통해 수직 감염되기 쉬워 예비 산모에게 백신 접종을 권하고 있다.
긁힘ㆍ상처 등을 통해 파상풍균이 근육을 마비시키고 통증을 일으키는 감염성 질환인 파상풍도 예방접종으로 막을 수 있다. 유년기에 파상풍 예방접종을 했어도 점점 면역력이 떨어져 10년 주기로 재접종을 해야 한다. 이미숙 경희대병원 감염면역내과 교수는 “바깥 활동이 잦은 사람은 파상풍 노출 위험이 증가되므로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65세 이상 어르신이라면 폐렴구균 백신 접종이 권장된다. 폐렴구균으로 인한 균혈증이 생기면 60%가, 수막염에 걸리면 80%가 사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65세 이상의 폐렴구균 예방접종률은 15%에 머물고 있다. 이 교수는 “침습성 폐렴구균 감염증 예방을 위해서는 예방접종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건강한 65세 이상 어르신은 평생 1회만 접종하면 된다”고 했다.
대상포진 환자가 매년 늘어나고 있기에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은 대상포진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 대상포진은 유아기에 걸렸던 수두 바이러스가 신경절에 잠복했다가 면역력이 낮아지면서 재활성화돼 신체 한쪽 부위의 피부에 심한 통증과 물집을 만든다. 대상포진 후 동통(疼痛) 등 합병증이 생기면 수개월이나 수년간 통증이 지속되기에 진통소염제와 신경통 약을 오래 먹어야 할 수 있다.
백일해는 보르데텔라 백일해균에 전염돼 발생하는 급성 호흡기 질환인데, DTaP 백신이 도입된 후 발병률은 현저히 줄었지만 2~3년 간격으로 유행이 반복되는 선진국형 유행 패턴을 보이고 있다.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이나 천식 등 만성 호흡기 질환자가 백일해에 걸리면 증상이 훨씬 심하게 나타나므로 반드시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최근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영ㆍ유아는 물론, 성인 예방접종률이 크게 낮아지면서 새로운 감염병이 많아질 우려가 높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