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별장 성접대 사건’이 불거진 뒤 건설 브로커 윤중천씨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성폭력 혐의로 세 차례 검찰 수사와 한 차례 법원 판단을 받았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성범죄로는 처벌받지 않았다. 성폭력 피해를 주장해온 여성 L씨를 지원해온 한국여성의전화(한여전)는 이에 대해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은 사건"이라고 규정한다. 한여전은 “사건의 본질인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성착취 문제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여전은 L씨가 1년 8개월 동안 윤중천씨에게 지속적인 성폭력에 노출됐다고 주장한다. L씨는 2006년 7월 원주 별장을 찾았다가 첫 강간 피해를 입었고, 그 뒤로 윤씨에게서 반복적으로 성폭력과 폭언·폭행, 불법촬영물 유포 협박을 받았다는 것이다. L씨는 윤씨가 마련한 서울 강남 오피스텔에 머물며 김 전 차관 등에게 성접대를 강요당했고 2008년 2월 그곳에서 탈출했다고 설명한다. L씨는 2013년 경찰의 끈질긴 설득 끝에 어렵게 피해 진술을 했지만, 검찰의 성폭력 무혐의 처분에 충격을 받고 이듬해에 한여전을 찾았다고 한다.
한여전 활동가들은 윤중천·김학의 사건을 '성착취 범행의 전형’이라고 규정한다. 윤씨가 L씨에게 했던 것처럼 불법촬영물 등으로 피해자를 쥐고 흔드는 방식은 'n번방' '박사방' 사건 등 온라인 성착취 행태와 유사하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최선혜 한여전 조직강화국장은 “가해자가 여성을 유인하거나 약점을 잡아 자신의 통제하에 두고, 목적 달성을 위해 여성의 성(性)을 도구나 상품처럼 이용했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윤중천씨는 여성 L씨를 상대로 욕설과 협박을 일삼았다고 한다. 최 국장은 “윤씨가 전화하면, L씨는 한밤중에도 오라는 장소로 바로 몸이 움직일 정도였다”고 했다. 검찰은 그러나 윤씨를 비롯해 성접대받은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종종 20만~50만원씩 용돈을 줬고, 특히 L씨에게는 윤씨가 오피스텔과 가게를 마련해줬다는 이유로 성폭력 피해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가 관계가 있었다고 자발적 성접대로 결론짓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해 남성이 여성에게 늘 폭력적 방식으로만 대하는 건 아니다”라며 “장기간 범행이 지속되면 피해자를 통제하기 위해 폭력과 협박뿐 아니라 이득을 제시하며 유인하고, 우호적 태도를 보이거나 연인 관계임을 주입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최선혜 국장도 “윤중천씨가 어떤 폭력과 협박을 했고, 여성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얘긴 빼고, 단편적이고 주변적 사실로 윤씨 행각을 성폭력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 건 문제”라고 진단했다. 여성이 금전적 대가를 받은 사실 자체에만 매몰돼선 안 되고, 윤씨가 여성들을 장기간 통제하고 지배하면서 지급한 보상 역시 하나의 '통제 수단'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단체는 결국 윤중천·김학의 수사가 피해자에 대한 선입견 없이 세심하게 진행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최 국장은 “L씨가 2013년 검찰 수사 땐 변호사 선임도 못해서 조사받을 때 동석할 사람이 없었다. 공황장애를 앓던 상황이라 친동생 동석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고 주장했다.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도 “검찰이 L씨를 포함한 피해자 조사 때 피해사실 확인보다는 (성폭력 피해가 인정된) 경찰 단계 진술을 탄핵하는 질문을 주로 했다”고 지적했다.
<글 싣는 순서> 윤중천ㆍ김학의 백서
<1> 면담보고서의 이면
<2> 진상조사단의 실체
<3> 반칙 : 윤중천이 사는 법
<4> 이전투구 : 김학의 동영상
<5> 법과 현실 : 성접대와 성착취
<6> 동상이몽 : 검찰과 경찰
<7> 반성 : 성찰 없던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