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담긴 비핵화

입력
2021.04.18 17:00
26면
'한반도비핵화'는 남·북·미 합의지만
비핵화 내용 관련 공통인식 부재
싱가포르 공동성명 바이든 입장 주시



지난달 블링컨 국무장관이 다녀간 후, 때아닌 비핵화 논쟁이 벌어졌다. 미국은 '북한 비핵화'라 하고,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라 하니, 한·미 간 입장 차가 있다고 한다.

불필요한 논쟁이다. 비핵화에 대한 남·북·미의 이해는 처음부터 달랐다. '비핵화'라는 용어 자체가 협상의 결과였다. 처음에는 영변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이 관건이었다. 북한은 남쪽에 미국 핵무기가 있는 한 사찰을 받을 수 없다고 맞섰다.

1991년 봄이 되자, 북한 핵사찰과 주한미군 핵무기를 연계할 수 있다는 의견이 한·미 양국에서 나왔다. 국내 한 언론은 '지금이 비핵화의 적기다'라는 사설을 내고, '한·미가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하고 미국은 한반도 밖에서 핵우산을 제공하면 된다'고 했다. 미국 포린어페어는 '핵우산 제공에 핵 배치가 꼭 필요하지 않다'는 기고문을 실었다.

미국은 요구를 한 단계 높였다. 핵사찰을 넘어 핵물질 생산을 포기하라고 했다. 비확산조약(NPT)은 사찰만 받으면 재처리를 허용한다. 다른 근거가 필요했다. 그래서 남북을 하나로 묶는 방안이 나왔다. 1991년 5월 폴 월포위츠 미 국방차관이 방한, 이상옥 당시 외무장관을 만나 남북대화에서 이 방안을 협의해 달라고 했다.

미국이 해외 배치 핵무기를 철수키로 하자, 남북 협상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10월 총리회담에서 북측은 '조선반도비핵지대화'를 제시했고, 11월 남측은 '남한 어디에도 핵무기가 없다'고 선언했다. 12월엔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합의했다.

북한은 재처리와 농축 포기 요구를 수용했다. 비핵지대화의 한미동맹 제약 요소, 즉 '핵무기 적재 가능한 비행기·함선의 영공·영해 통과와 착륙·기항 금지', '핵우산 금지', '핵무기·핵장비 동원 또는 핵전쟁 가상 군사연습 중지'는 철회했다.

소련이 무너지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당시 국방부 군비통제관 박용옥 소장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인민무력부 부국장이던 김영철 중장은 "이 협정은 당신들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다"라고 했고, 이에 박 소장은 합의가 실제 이행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북한은 이 선언을 무력화하다가 2009년 1월 폐기했다.

'북한비핵화'냐 '한반도비핵화'냐. 1991년에 이미 '한반도비핵화'로 정했다. 북한의 요구와 한·미의 고려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그러나 비핵화 내용에 대한 이해는 같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북한은 30년 전 철회한 비핵지대화 요소를 다시 꺼냈다. 2016년 7월 '비핵화는 남한 핵폐기와 남조선 주변 비핵화를 포함한다'는 정부 성명을 냈고, 2019년 2월 하노이회담 두 달 전에 재확인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무엇을 줄 것인가'도 열려 있는 질문이다. 제재만으로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버티기에 관한 한, 북한을 따를 자 없다. 코로나로 빗장을 걸어 잠근 지금보다 더한 고립이 있을까? 나아가 중국이 고비마다 전략적 개입을 한다.

30년간 비핵화 협상에서 숱한 합의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유효한 문건은 몇 없다. 비핵화선언과 북·미 제네바합의는 폐기됐고, 2005년 9·19 공동성명도 지금은 의미가 없다. 남은 것은 2018년의 남·북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 그리고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이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완전한 비핵화로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판문점선언 3조 4항을 통해 '한반도비핵화'에 연결된다. 이마저 없어지면 북핵협상은 원점에서 새판을 짜야 할 듯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가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