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궐선거가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로 끝났다. 가장 이례적 현상으로 20대(18, 19세 포함)의 오세훈 후보 지지가 거론된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 남성의 지지율은 오세훈 (72.5%) ,박영선(22.2%), 기타(5.2%) 순이고, 20대 여성은 박영선(44.0%), 오세훈 (40.9%), 기타(15.1%) 순으로 남녀가 지지 성향의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20대 여성의 진보 성향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성차별에 대한 민감한 권리의식이 사회적 불평등 전반으로 확장되면서 정치적 관여가 활성화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대 남성의 압도적인 국민의힘 지지는 당혹스럽다. 동일세대에서 성별에 따라 지지 성향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백래시(backlash)’와 20대 남성의 보수화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20대 남성의 투표 성향보다 개인적으로 더 당혹스러웠던 건 젠더이슈 자체의 실종이다.
두 시장의 성추행 문제로 시작된 이번 선거는 최소한 성폭력 예방 등 포괄적인 성평등 정책이 캠페인의 한 축이었어야 한다. 하지만 캠페인은 온통 부동산을 중심으로 프레임이 설정됐다. 여성민우회는 거대 양당 후보들의 공약에 젠더 정책이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했다. 후보들의 젠더의식을 평가하기 위해 여성민우회가 후보들에게 보낸 질문지에 오세훈, 박형준 두 국민의힘 후보와 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응답조차 하지 않았다. 선거의 두 중심축인 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 모두 젠더문제를 의식적으로 피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의 원죄를 들추기 싫었을 것이고, 국민의힘은 평소 취약한 젠더문제보다 집값 폭등 책임론이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두 피해 여성의 고발로 촉발된 이번 선거는 엉뚱하게도 집값 폭등으로 ‘벼락거지’가 된 이들의 박탈감을 달래는 것으로 끝났다.
왜 젠더문제는 피해자가 고발하는 순간만 주목을 받았다가 늘 뒷전으로 밀려야 하는가? 평소 여성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자 항변이다. 이번 선거에 답이 있을 것 같다. 성평등을 내세우는 진보당의 정치인들의 성인지 감수성은 결과적으로 기대 이하였다. 동년배의 평균적인 보수당 정치인의 성인지 감수성이 더 나을 것 같지도 않다. 20대 남성들은 취업기회, 임금, 승진 등 노동의 전 영역에서 여전히 여성에 차별적인 제도와 관행을 그들이 줄곧 외쳐온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요소로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결국 문제의 뿌리는 사회 저변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이 아닐까 싶다. 우리 사회는 여성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동의의 수준은 높지만, 무엇이 차별인지 분별하는 감수성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진보적인 정치인들이 줄줄이 성범죄에 연루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인지 감수성은 어릴적부터 양치습관처럼 자연스럽게 훈육되어야 실질적인 개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지난달 25일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치원부터 성인지 교육을 시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성인지교육 지원법안’을 발의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과 교직원들의 성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성 인권교육 강화와 성소수자에 대한 보호의 명문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2기 학생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정책적 시도들이 성인지 감수성의 조기 교육을 활성화하는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