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폐 가치 하락 속에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금융 시스템의 진화 과정에서 금의 역할에 비춰 본다면 디지털 금으로서 비트코인의 진가를 더욱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현재 경제를 움직이는 기본 원리는 수정자본주의라고 일컫는 케인스주의다. 적극적인 정부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스주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1920년대 대공황을 겪으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서 핵심 원리였을 만큼 20세기 경제에서 명실상부한 대세가 됐다. 1차 세계대전으로 촉발된 금본위제 폐지를 시작으로 자유로운 화폐 발행에 걸림돌이 되는 금, 은 화폐 체계는 점점 힘을 잃었다. 금 기반 화폐 시스템의 마지막 보루였던 브레튼우즈 체제도 1971년 닉슨 쇼크로 막을 내렸다. 지금은 화폐 발행권을 100% 정부의 재량에 맡기는 것에 사람들은 별다른 이의가 없다. 또한 우리는 화폐 가치(한국은행 M2(광의통화) 증가율 기준)가 매년 3%에서 15%까지 희석되는 상황에서 화폐가 가치 보전을 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화폐는 가치 보전, 교환 매개, 가치 측정 단위라는 세 가지 기능이 필요한데도 우리가 화폐 하면 교환 매개 수단으로만 생각하게 된 이유다.
케인스주의 이전 경제학자들은 돈의 본질에 주목했다.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는 어떤 물건이 화폐가 되는 과정을 수집품, 가치 저장 수단, 교환 매개 수단, 가치 측정 단위의 4단계로 구분했다. 물건이 인간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며 가치 측정 단위까지 올라서면 마침내 ‘돈’이 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춰보면 인류 문명 탄생 후 20세기 초반까지 화폐로 사용된 금은 우리의 경제활동에서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상대적으로 희소성까지 우수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세계 금융의 닻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금융 시스템과 금의 연관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1971년 닉슨 쇼크로 금태환제도가 폐지된 후 각국 중앙은행이 금의 역할을 축소시키면서 5,000년의 역사가 50년 만에 사라진 것이다.
비트코인은 금의 물성 중 돈으로서의 측면은 살리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 설계됐다. 화폐 기능 수행 시 필요한 내구성, 가분성, 동질성, 대체성, 희소성 등의 물성을 디지털상에서 암호화 기술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우선 비트코인은 금보다 뛰어나다. 또한 비트코인은 중개인에 의존하지 않는 비허가성 네트워크에서 존재하는 디지털 자산이라 금보다 효율적인 거래도 가능하다. 희소성에서도 금의 공급이 금 가격 상승에 따라 증가하는 것과 달리 비트코인 채굴량은 2,100만 개로 고정돼 있어 가격 움직임과 무관하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이다. 단순히 금 가격과 비트코인 시세가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근시안적인 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