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사건의 핵심 피고인인 임종헌(62)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최근 이 사건으로 기소된 또 다른 전직 법관들에 대한 유죄 판결과 관련해 "의견을 밝히기 부적절하다"고 13일 밝혔다. 앞서 재판부가 먼저 '의견이 있으면 내 달라'고 제안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 다만 임 전 차장 측은 재판부가 공정한 재판을 할지 우려된다는 의사를 거듭 피력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 윤종섭) 심리로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임 전 차장은 이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 대한 재판은 법관 정기인사를 앞둔 지난 1월 잠시 중단됐다가 3개월 만에 재개됐다.
재판부는 이에 앞서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23일 처음으로 1심 유죄가 선고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사건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최근 임 전 차장 측에 요구했다. 두 사람의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와 임 전 차장 사건 재판부의 인적 구성이 동일한 만큼, 앞선 유죄 판결이 임 전 차장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지 답변해 달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임 전 차장 측 변호인은 이날 법정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피고인이 (관련 사건 판결에 대해) 입장을 내는 건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이어 "언론 보도를 통해 내용은 대략 알지만, (이민걸 전 실장과 이규진 전 상임위원에 대한) 판결문을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장인 윤종섭 부장판사는 의견을 요구한 취지에 대해 "관련 사건 선고와 향후 이 사건 심리가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서 의견을 물은 것"이라며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소송관계인들의 신뢰 속에 재판이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이 전 실장 등에게 유죄를 선고한 만큼, 공범으로 적시된 임 전 차장에게도 유죄 판결을 내릴 것이라는 추측이 일각에서 제기되는 상황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윤 부장판사는 또 "이 전 실장 등에 대한 선고 이후 재판부 구성원 모두 몸과 마음이 지쳐 힘들었다"면서도 "(임 전 차장 사건은) 헌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임 전 차장 측은 그러나 재판부의 공정성 문제를 다시 한번 제기했다. 변호인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7년 10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와 관련해 일선 판사들과 면담을 가졌다는 한 일간지 보도에 대해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에 사실조회를 신청했다. 해당 기사에선 윤 부장판사가 "반드시 진상 규명을 하고 연루자들을 단죄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은 "그간 김 대법원장이 보인 태도를 보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연루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하라는 의중을 비췄다고 보기에 충분하다"며 "공정성 논란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2월 법관 인사에서 윤 부장판사를 서울중앙지법에 6년째 유임시켜 '코드 인사' 논란을 빚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