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애환 달래며 전승... '막걸리 빚기', 문화재로 지정된다

입력
2021.04.13 15:45
문화재청, '막걸리 빚기 문화' 무형문화재 지정 예고


“상(常) 막걸리는 하등쌀이나 쌀래기나 한 말가량을 절구에 찧고 쪄서, 누룩 넉장가량을 찧어 섞고, 여름에는 만장쯤 더 놋나니, 물은 맑은 술보담 더 붓고 덥혀두면 겨울에는 열흘 동안이요. 여름에는 니레(7일) 동안이면 걸으되 술 맛을 보아가며 물을 치나니라.”

1924년 조선의 둘도 없는 최신 요리책이란 뜻을 가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나오는 막걸리 제조법이다. 이보다도 훨씬 전인 1837년에 발행된 주조법을 다룬 책 ‘양주방’에도 막걸리를 만드는 방법이 나온다. ‘멥쌀 6되를 가루로 하고, 가루누룩 한 되와 석임 한 되를 한데 넣고 사흘 만에 찹쌀 네 되를 쪄서 술밑에 버무려 넣는다. 사흘 뒤면 익는다’는 식이다. 과거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과 같은 문집에도 막걸리로 추측되는 ‘백주’라는 용어가 나온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도 ‘지주(旨酒)’, ‘료예(醪醴)’ 등 막걸리로 추정할 수 있는 용어가 사용됐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한반도 전역에서 전승ㆍ향유돼 온 ‘막걸리 빚기 문화’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막걸리 빚기 문화를 신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한다고 13일 밝혔다. 지정 예고 대상은 막걸리 빚는 작업을 비롯해 경조사 등에서 보이는 전통 생활관습까지다.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관계자는 “과거 어른들은 집안 대소사 때 막걸리를 빚어 이웃들과 나눠 마셨는데, 이런 문화는 오늘날 건축물의 준공식과 개업식 등에서 제물로 막걸리를 올리는 문화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해당 관습들을 포함해 문화재 지정 예고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속담, 농요 등에 등장하는 막걸리를 통해 한국문화를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도 막걸리 빚기 문화의 문화재 지정 예고에 힘을 보탰다. 예컨대 ‘농주는 시장기를 때운다’와 같은 속담에서 막걸리가 농번기 시기 농민의 고단함을 덜던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막걸리 빚기 문화의 문화재 지정 예고는 국민의 직접 제안으로 지정 예고되는 첫 사례이기도 하다. 대한탁약주제조중앙회와 사단법회 막걸리협회의 제안에 따라 이뤄진 것인데, 이들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막걸리 산업의 뿌리와 근본을 밝혀 앞으로 예상되는 다른 나라에서의 동종 주류 생산에 있어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고, 우리나라 주류문화에 대한 긍지를 높이는 차원에서 막걸리 빚기의 문화재 지정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통주 전문가들은 막걸리 빚기 문화의 신규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예고를 두고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김치 문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듯, 막걸리 빚기 문화가 문화재가 되면 우리 술 문화를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13일부터 다음 달 12일까지 30일간 각계의 의견을 수렴,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채지선 기자
강지원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