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검찰총장 인선 작업이 당초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자타공인 1순위’로 꼽혔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형사사건으로 기소될 위기에 처한 데다, 정부ㆍ여권으로선 ‘4ㆍ7 재ㆍ보궐선거 참패’라는 정치적 변수도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된 탓이다. 한 달 전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퇴로 빚어진 ‘총장 공백’ 상태를 “전광석화처럼 메우겠다”고 했던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이제는 ‘신중한 고려’를 언급하며 종전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박 장관은 12일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 소집 일정과 관련해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 절차를 예측하기 어렵다”며 “당장 계획하고 있는 건 없다”고 밝혔다. 이날 출근길에 취재진을 만난 그는 “신속히 (검찰총장) 공백 사태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충분히 많은 요소를 고려해 잘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좀 더 신중히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검찰총장 선발 작업이 늦춰지고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박 장관의 이 같은 발언에 비춰, 애초 재ㆍ보선 이후인 이번 주중으로 예상됐던 추천위 회의도 이르면 다음주에나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박 장관이 윤 전 총장 사퇴 일주일 후인 지난달 11일 “이번엔 전광석화처럼 속도감 있게 구상을 하고 있다”면서 속전속결 방침을 내비친 것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최대 요인은 ‘이성윤 리스크’다. 문 대통령의 경희대 후배인 이성윤 지검장은 현 정부 들어 검찰 요직을 줄줄이 꿰찼다. 사건 처리에서 ‘친(親)정권 성향’도 숨김 없이 드러내는 등 ‘임기 말 정권 보호’ 임무를 맡길 적임자로 거론돼 왔다. 하지만 검찰 내 신망을 잃었다는 게 약점이었는데, 급기야 2년 전 대검 반부패ㆍ강력부장 시절 ‘김학의 불법출국금지 의혹 수사 중단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질지도 모르는 처지가 됐다. 게다가 그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부터 ‘황제 조사’를 받았다는 논란에까지 휩싸여 있다.
특히 재ㆍ보선 참패로 ‘이성윤 카드’를 밀어붙이긴 더욱 힘들어졌다. 검찰의 반발뿐 아니라, 여론의 역풍마저 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피고인 검찰총장 후보자’라는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성윤 지검장을 발탁할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이 지검장 기소 여부가 결국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 차장검사)의 손에 달렸다는 건 눈여겨볼 대목이다. 조 총장대행으로선 차기 총장 레이스에서 경쟁 관계인 인사의 ‘운명’을 최종 결정해야 할 공교로운 입장이 됐다는 얘기다.
문제는 정권 입장에서 이 지검장 외엔 ‘믿을 맨’이 딱히 없다는 점이다. 이에 더해 국민 천거를 받은 대상자들한테서 추가 제출을 받아 검토할 자료도 의외로 많아, 사전 검증이 다소 길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청와대ㆍ여당이 선거 참패에 따른 조직 정비를 마친 뒤에야 차기 총장 인선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며 “정권에 대한 로열티(충성도)와 검찰 조직 내 신망 중 무엇을 더 중시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