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의 폭력이 나날이 심해지는 가운데 현지에서 활동해온 한국 종교인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자국민에게 철수를 권고한 상황에서 이들이 운영하던 복지시설도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양곤에서 6년째 사목활동을 펼쳐온 A씨는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아이들만이라도 한국으로 데려갈 수 없느냐고 물었다.
천주교 인천교구를 통해서 전달된 A씨의 편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미국 언론사 CNN의 현지 취재를 기점으로 양곤에서는 총성이 잦아들었다. 편지가 작성된 9일 기준으로 도심 시위도 소강상태다. 외신의 A씨는 “오히려 지방에서 시위와 교전이 늘어났고 한국 언론에서 보도하는 장면은 지방 소식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평화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당장 8일에는 양곤 안팎에서 폭탄 공격으로 보이는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군부는 한 기업인이 벌인 테러라고 발표했지만 A씨는 믿기 어렵다면서 “본격적으로 내전 양상을 보이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혼란 때문에 경제활동이 거의 멈췄고 은행에서의 출금이 규제돼 한국인이 운영하는 업체들도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빈민들을 위한 한국인 종교인들의 봉사활동도 거의 중단된 상태다. 본보가 국내 종교단체들을 통해서 확인한 결과, 군부의 발포로 사망자가 600명이 넘어가는 등 폭력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종교인들이 의료봉사 등을 중단했다. 군부는 자국민을 지원하는 활동까지 견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성당의 진료소를 지원하던 은인이 체포되기도 했다”고 말을 줄였다.
A씨는 “천주교 성직자들이 직접적으로 위협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나 위협을 느낄 만한 분위기는 계속되고 있다”면서 “성당 주변에도 낯선 이들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악화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의 귀국 권고를 선뜻 따르기가 어려운 종교인과 교민들도 있다. 현지인들을 돕던 종교인들은 장기간 펼쳐온 봉사활동을 중단하기가 쉽지 않다. 또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현지에서 혼인한 교민들 역시 삶의 터전을 떠나기가 힘들다. A씨는 “7일까지 전체 교민의 10% 정도가 귀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많은 사람이 미얀마의 신년인 띤잔 축제(4월 13일) 전후로 귀국할 예정으로 알고 있으나 일부는 떠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부 교민 사업체들은 5월까지 현재의 어려움이 해소되지 않으면 폐업할 위기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일부는 4월부터 무기한 휴업을 결정했고 따라서 4월 말이나 5월에는 여러 사람이 귀국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A씨는 한국 정부가 비상상황 대처 요령이 담긴 안내서를 제작해 교민들에게 보급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현지에서는 차명 전화를 쉽게 개통할 수 있어서 한국 정부가 교민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전화번호를 완벽하게 파악해 연락망을 만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교민끼리 SNS를 통해서 활발히 소통하지만 인터넷이 끊기는 시간도 늘고 있다. A씨는 "이미 대처 요령과 대피 장소가 정해진 것으로 아는데 이를 모르는 교민이 많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와 국민의 지지가 미얀마 국민에게 힘이 됐다고 A씨는 설명했다. 특히 한국 불교계의 미얀마 민주화 기원 오체투지 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현지인들이 매우 고마워하고 있다. A씨는 “한국 천주교가 모금활동으로 현지에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애쓰고 있지만 쿠데타 이후의 상황이 정말로 좋지 않다”면서 “미얀마의 신부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공동체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띤잔 축제를 기점으로 군부의 폭력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어서 A씨의 이름을 익명으로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