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서 항공 전력 1위가 어디냐’는 질문의 답은 너무나 쉽습니다. 1,000조 원에 가까운 군사비를 지출해 ‘천조국’(千兆國)으로 불리는 미국의 공군입니다. 항공전문매체 ‘플라이트 글로벌’이 펴낸 2021 세계 공군력 순위 보고서에 따르면, 미 공군은 ‘현존하는 세계 최강 전투기’인 F-22를 178대, 적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는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인 F-35A를 116대나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2006년 모의 공중전에서 144대 1로 F-15, F-16, F-18 등 정상급 전투기를 모조리 격파시킨 ‘꿈의 전투기’ F-22는 그 위력이 엄청나, 기술 보호 차원에서 미 공군만 보유하고 있습니다. 1대당 가격이 2억~3억 달러(2,242억~3,363억 원)나 할 정도로 돈을 아끼지 않고 너무 잘 만들어버린 탓(?)에 2012년 인도분을 끝으로 생산 중지명령을 내린 건 유명한 일화입니다.
항공 전력 2위도 궁금해집니다. 중국이냐, 러시아냐 의견이 분분하지만 방산분야 전문가들은 미 해군을 꼽습니다. 미 해군이 보유한 전투기만 426대로 중국(1,571대)이나 러시아(1,531대)가 보유한 전체 전투기 수에는(미군 전체는 2,717대) 미치지 못하지만, 질적 측면에서 압도한다는 평가입니다. 실제 미 해군이 보유한 핵 공중지휘기 ‘E-6B 머큐리’ 같은 특수임무기는 408대로, 러시아(130대)나 중국(115대)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바다를 지키는 해군이 무슨 전투기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탑건>을 비롯해 <미드웨이>, <에너미라인스> 등 우리가 알 만한 파일럿 소재 영화 주인공들은 대부분 미 공군이 아닌 해군 소속입니다. 항공모함으로 전세계 바다를 누비는 미 해군은 효율적 작전을 위해 자체 항공부대를 꾸렸고, 이에 미 공군에 버금가는 항공 전력을 갖추게 됐습니다. 해군까지도 전세계 하늘을 지배하는 미국의 항공 전력은 감히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에 가깝습니다.
이런 미국이 만든 최첨단 전투기를 아무나 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첨단기술이 들어간 전투기를 아무 국가에나 팔지 않기 때문입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일원으로 F-35 공동개발국이었던 터키는 러시아제 무기를 사들인 탓에 미국과 계약한 ‘F-35 100대 도입’을 거부당했습니다. 우리는 다행히도(?) 한미동맹 덕에 우수한 미국산 전투기로 항공 전력 대부분을 채웠고요. 미국이 전 세계 20개국 정도에만 팔았다는 F-35A도 40대를 확보했습니다.
그런 우리나라가 지난 9일,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국산전투기(KF-X) 시제 1호기를 공개했습니다. 그간 ‘KF-X’로 불렸지만 이날 ‘KF-21’(별칭 보라매)이라는 ‘진짜 이름’도 생겼습니다. 한국형전투기를 의미하는 ‘KF’(Korea Fighter) 뒤에 임시로 따라다니던 ‘실험’을 의미하는 ‘X’(eXperimental)를 완전히 떼어낸 겁니다. ‘21세기 하늘은 우리 힘으로 지킨다’는 의미가 KF-21에 담겼습니다.
이날 행사는 ‘개발 중인 무기체계가 공장 밖을 나와 대중에게 선보인다’는 의미의 출고식이었습니다. 당장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지요. 내년 상반기까지 총 8대의 시제기(지상시험 시제기 2대 포함)가 제작되면, 지상에서 내구력 테스트를 통과해야 시험비행을 할 수 있습니다. 내년 7월부터 2026년까지 총 2,200여 회의 시험비행까지 무사히 마쳐야 2026년부터 양산이 가능합니다. 군 당국은 2032년까지 120대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KF-21은 뛰어난 레이더와 컴퓨터 성능을 보유한 ‘4세대 전투기’와 적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는 스텔스 기술이 적용된 ‘5세대 전투기’의 중간인 ‘4.5세대 전투기’라는 점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스텔스 성능이 없다는 겁니다. 스텔스 전투기가 주요국의 항공 전력으로 활약하고 있는데, 그보다 성능이 한 단계 낮은 KF-21을 5, 6년 뒤에 양산하는 게 적절하느냐는 비판이죠.
전투기는 300대 이상 팔아야 수지타산이 맞는다고 합니다. 우리 군에 납품할 120대를 빼면, 공동개발국인 인도네시아를 제외하고 다른 나라에 180대 이상을 실제 수출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한국형 전투기 사업이 그간 7차례 있었던 ‘사업타당성 조사’에서 6차례나 ‘타당성 없다’는 결론이 나온 주요 이유입니다. 투입 비용 대비 이득을 남길 수 없는 구조라는 이야기지요.
첨단기술의 집약체인 전투기 개발은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동체에 부착되는 센서를 비롯해 레이더와 엔진, 체계조립 등 수십 년간 축적된 기술 확보가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선발주자들이 개발비를 회수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탓에 후발주자들은 출발선에서부터 고전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최첨단 기술이 접목돼야 하기에 현장 관리자들은 기본적으로 석·박사 학위 소지자에 전문 지식도 갖춰야 합니다. 말단 인력도 수개월 넘게 전문 교육을 이수해야만 개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자동차와 철강 산업 등에서는 앞선 우리나라가 유독 항공, 특히 전투기 개발 분야에서는 선진국 수준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1991년 국내 최초 독자개발 훈련기인 KT1 시제기 초도비행 성공을 시작으로 1994년 미 록히드마틴사의 F-16을 면허 생산해 우리 공군의 요구 성능에 맞는 ‘KF-16’을 만들었습니다. 항공기 대량생산과 체계적인 시험평가 기술을 갖추게 된 계기였지요. 2005년에는 초음속 고등훈련기인 T-50을, 2012년에는 이를 기반으로 경공격기 FA-50을 각각 개발하는 데 성공해 현재 이라크와 동남아 국가 등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다만 전투기는 지금까지 우리가 개발한 군용기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T-50은 조종사를 훈련시키는 목적기입니다. 전장에 투입되지 않아 무장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경공격기인 FA-50은 무장과 공격 능력이 일부 있지만 제한적입니다. 전투기는 공대지는 물론 공대공 등 적기를 잡는 모든 능력이 갖춰져 있지만, 공대지 공격 위주인 FA-50은 공중에서 자기 방어만 할 뿐 원거리에 있는 적기를 격추하진 못합니다. 전투기에 적용되는 소프트웨어 기술도 고난도입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우리가 무슨 수로 전투기를 만드냐는 의구심이 계속된 이유입니다. 통상 항공 전력 선진국들도 10~20년이 걸리는 전투기 개발을 2002년(합동참모회의 소요 결정)에 하겠다고 뛰어들었으니 말입니다. T-50과 FA-50 개발이 완료되기도 전이니, 말 그대로 ‘무모한 도전’으로 비쳐졌습니다. 게다가 미국이 승낙할 줄 알았던 4대 핵심기술 이전도 막판에 불발됐고요.
이에 1960~1970년대 베트남전에 참전한 노후 전투기인 F-4, F-5를 제때 교체해 전력 공백을 막으려면 검증된 전투기를 해외에서 직구매해야 한다는 의견이 거셌습니다. 시간과 개발비용, 시장경쟁력 등을 감안할 때 전투기 개발은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전투기 개발국이 12개나 될 정도로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입니다. 미국에서 성능이 검증된 전투기를 사오는 게 더 쉽고, 저렴하고, 안전한 선택이라는 겁니다. 평소 굳건한 한미동맹은 이럴 때를 대비하라고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지요.
그러나 문제는 무기 판매국의 콧대가 높다는 점입니다. 애프터서비스(AS) 정신이 제로(0)에 가깝습니다. 2019년 3월, 1대당 1,000억 원을 들인 F-35A가 국내에 처음 들어왔지만, 당시 우리 공군 수뇌부는 보안 절차 때문에 곧바로 전투기 실물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미국이 전력 노출을 이유로 보안을 까다롭게 요구한 겁니다.
그간 미국에서 들여온 전투기들도 대부분 비슷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우리 돈으로 사온 전투기지만 우리 마음대로 운용하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고장이 나도 핵심 부품을 건드리지 못한 채, 일일이 미국에 문의하고 허락을 받아야 했지요. 수리비는 물론 성능 개량 비용도 미국에서 '부르는 게 값'이었습니다. 바가지를 씌워도 찍소리 못했던 겁니다.
전투기의 총 운용비 가운데 최초 도입비는 30%에 불과하고 유지 보수비용이 70%를 차지합니다. 전투기는 한 번 구입하면 보통 30~40년을 실전에 배치하는데 구입비보다 보수비용이 더 많은,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죠. 일례로 2011년 F-15K에 장착된 센서 ‘타이거 아이’가 작동하지 않아 수리를 요구하자, 미국은 "봉인이 훼손됐다"며 “한국이 기술 도둑질을 하려 했다”고 모함했던 서러운 기억도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개발한 미사일 등 무기체계를 전투기에 장착해 테스트하려고 해도 미국 눈치를 봐야 합니다. 무기체계 개발도 더딜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집을 샀지만 집주인이 아닌 계속 세입자 신세로 머무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결국 우리 손으로 독자 플랫폼을 개발하면 모두 해결됩니다. 전투기 개발까지는 비용이 들지만, 운영비가 저렴해지고 수리는 물론 우리가 개발한 무기를 자유롭게 장착할 수 있습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과거 미국의 T-38 탈론, 영국의 T-59 호크 훈련기를 사용할 때는 한번 고장나면 훈련기를 해외에 보내 수리에만 6개월에서 1년 이상이 걸려 속이 타들어갔다”며 “때문에 수리에 대비한 여유분으로 10대 이상을 더 구매해야 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 "하지만 T-50을 개발한 이후에는 문제가 생겨도 경남 사천에 있는 KAI(한국항공우주산업)에 전화하면 하루 이틀이면 해결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군 당국이 온갖 수모와 난관을 겪고 KF-21 개발에 나선 이유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세중립국이었던 스웨덴은 같은 중립국인 노르웨이, 벨기에가 독일의 공격에 무참히 무너지는 걸 보고 독자 무기체계 개발에 본격 나섰습니다. 자국 영공을 수호하는 드라켄과 비겐 전투기는 이 과정에서 나왔고, 스웨덴은 중립국 지위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작지만 강한 전투기’로 평가 받는 그리펜 전투기 개발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전투기 개발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스웨덴 정부는 지금도 항공산업의 맥이 끊기는 걸 막기 위해 도입 10년이 지난 전투기를 중고로 구매한다고 합니다. ‘국가가 먹거리를 만들어줄 테니 지속적으로 기술을 개발하라’는 정부의 결단과 국민적 공감대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나라에 CN235 수송기를 수출할 정도로 1990년대 초까지 동남아 항공 산업의 선두를 달렸던 인도네시아는 그 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기술의 아버지’라 불렸던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 전 대통령이 과학기술부 장관 시절부터 방위산업을 집중 육성했지만, 1990년대 말 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에 맥을 못 추고 몰락하게 된 겁니다.
“못할 줄 알았는데 결국 해냈다.”
KF-21 시제기 출고 소식에 가장 많이 접한 반응입니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국산 전투기 개발의 필요성’을 언급한 이후, 시제기를 출고하기까지 20년이나 걸렸으니 말입니다. 미국이 이전을 거부한 핵심 기술들도 우리 손으로 해냈습니다.
방위사업청과 KAI 개발진 말대로, 한국형전투기 사업은 세계 최고의 전투기를 만드는 사업이 아닙니다. 우리의 독자 플랫폼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 목표입니다. 그 플랫폼 기반 위에서 미사일도 개발하고 전투기 성능개량도 해나갑니다. 실제 KF-21은 향후 스텔스기를 염두에 둔 형상으로 제작됐습니다.
이제 남은 건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개발진의 뒷심과 국민적 응원입니다. 전투기를 개발하고도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양산을 포기한 대만과 이스라엘 사례도 되짚어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군의 ‘무모한 도전’에 격려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