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SK 배터리 합의...국내서 특허 전쟁 못 푸나

입력
2021.04.12 04:30
27면

LG에너지솔루션(LG화학에서 물적 분할)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분쟁이 713일 만에 타결됐다. LG화학은 직원 100여 명이 SK로 이직한 뒤 SK가 대규모 수주를 따내자 2019년 4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영업비밀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ITC는 지난해 2월 LG측 주장을 받아들여 SK에 대한 조기 패소 예비 결정을 내렸으나 이후에도 양사는 평행선을 달렸다. 그런 양사가 배상금 2조 원 지급에 극적으로 합의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명분을 지킨 LG는 기술 개발과 투자 확대에 주력할 수 있고, SK이노베이션도 미국 사업을 차질 없이 진행하게 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마감 전날 한미 양국 정부의 중재 노력 속에 합의가 이뤄진 점도 정치·외교적 부담을 덜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이제 양사는 세계 시장과 기술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길 바란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은 지식재산권 보호와 공정한 경쟁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기술 개발뿐이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지난해 500억 달러에서 2025년 1,600억 달러로 성장, 메모리반도체 시장 규모도 뛰어넘을 전망이다. 그동안 소송이 장기화하면서 자칫 중국과 일본, 유럽만 어부지리를 얻을 것이란 우려가 컸다. 이번 합의가 K배터리 산업을 다시 충전하고 국가적 차원의 배터리 중장기 전략을 마련하는 계기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정부도 특허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제도적 보완에 나설 필요가 있다. 기업들이 미국에 소송을 내는 건 ITC 특허 판사의 지식재산권 전문성이 높은데다 소송 절차가 신속하고 수입 금지 등 강력한 구제 조치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우리 기업이 미국에서 쓴 소송 비용과 로비 자금 등은 수천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충분히 지식재산권을 지킬 수 있는 장치가 구축돼야 타국에서 국부가 낭비되는 일이 줄어든다. 특허 소송 관련 전문성을 확보하고 절차도 간소화하는 게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