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시트콤 '논스톱3' 출신으로 일본에서 유명 모델로 활동하던 김영아는 종합편성채널 TV조선 부부 관찰 예능 프로그램 '아내의 맛' 제작진에게 2019년 출연 요청을 받았다. 김영아의 남편은 일본 유명 아이돌그룹 AKB48 매지니먼트사였던 '오피스48' 대표 시바 코타로. 한국 방송 복귀를 고민했던 김영아는 '아내의 맛' 출연 제안을 결국 고사했다. "일본에서의 일상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 (출연)하기로 했지만, 갑자기 제작진이 럭셔리한 인생만을 권유했다"며 "그런 인생을 안 사는데 어떻게 보여드릴까 하다가 안 하기로 했다"는 게 당시 그가 밝힌 출연 거부 이유였다.
그로부터 2년 후 '아내의 맛'에 결국 '일'이 터졌다. 고정 출연자였던 함소원 부부의 조작 방송 논란으로 '아내의 맛'이 13일 돌연 종방한다. 리얼리티를 담보로 한 관찰 예능이 거짓 방송 논란으로 막을 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내의 맛'에 소개된 함소원의 일상이 거짓으로 포장됐다는 의혹이 지난달부터 잇따라 제기되면서 우롱당했다고 느낀 시청자들의 비판이 걷잡을 수 없이 거세지자, 방송사는 '종방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제작진과 출연진이 '재미'를 방패막이 삼아 감행한 '선'을 넘은 제작 행태, 즉 방송가의 도덕불감증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내의 맛' 제작진은 8일 "함소원과 관련된 일부 에피소드에 과장된 연출이 있었음을 뒤늦게 파악했다"며 "방송 프로그램의 가장 큰 덕목인 신뢰를 훼손한 점에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한다"며 종방 이유를 밝혔다.
그간 제기된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아내의 맛' 속 함소원은 1960년대 미국에서 신분 위조 행각으로 여러 사람을 농락한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주인공 프랭크 애버그네일(리어나도 디캐프리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방송에 나온 함소원 부부의 중국 광저우 신혼집은 월세 200만원의 단기 임대 모델하우스였고, 하얼빈의 시부모 별장으로 소개된 곳은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숙소라고 한다. 함소원의 남편이 탔던, 운전기사 딸린 고급차 마세라티도 빌린 것이고, 방송에 나온 남편 소유 의류 공장도 남의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에서 '대륙 스케일'이라 불리며 소개됐던 함소원의 화려한 생활이 대부분 거짓이라는 의혹이었는데, 자신을 둘러싼 잡음이 커지자 함소원도 뒤늦게 이를 인정했다. 그는 지난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직접 글을 올려 "과장된 연출하에 촬영했다"며 "제가 개인적인 부분을 (제작진에) 세세히 다 이야기하지 못했다.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제작진은 "모든 출연진과 촬영 전 인터뷰를 했으며, 그 인터뷰에 근거해서 에피소드를 정리한 후 촬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며 "출연자의 재산이나 기타 사적인 영역에 대해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이기 때문에 제작진이 사실 여부를 100% 확인하기엔 여러 한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제작진은 거짓 방송의 원인을 출연자에 돌렸지만, 함소원의 중국 시댁 자산 부풀리기 등을 제작진이 과연 몰랐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제작진은 2018년 6월부터 함소원과 3년여를 함께했다. 관찰 예능 특성상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출연자의 일상과 삶을 오랫동안 들여다봤을 텐데도 함소원의 위조 행각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여년 차 예능 작가 A씨는 "육아 예능을 하면 아이들이 아빠보다 더 따르는 사람이 바로 작가들"이라며 "관찰 예능 몇 년을 함께하다 보면 출연진과 제작진이 유착될 수밖에 없는데 제작진이 함소원의 결혼 생활 과대 포장을 여태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의아하다"고 말했다.
방송관계자들은 '아내의 맛' 조작 방송을 출연자와 제작진의 과욕이 맞물려 벌어진, 제작 시스템의 문제로 보고 있다. 20여년 차 예능 작가 B씨는 "3년 전 국내 방송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함소원은 부부 관찰 예능에서 주목받기 위해 '중국 자산가 시댁과 능력이 출중한 외국인 연하 남편'이란 배경을 부각하고 싶었을 테고, 제작진은 그 한·중 부부를 통해 화려하고 낯선 국제 부부의 삶이란 새로운 화면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라며 "그렇게 서로 과장을 묵인하며 촬영을 해오다 탈이 난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공희정 방송평론가는 "방송이 유튜브와 다른 점은 잘못된 것을 걸러내는 자정 기능"이라며 "'아내의 맛' 문제는 출연자와 제작진의 잘못된 생존전략으로 인해 불거진 공동 책임"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