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에 ‘글로벌 최저 법인세’ 도입을 주장했던 미국이 이번에는 “다국적기업의 매출이 발생한 나라에 세금을 납부하자”는 제안을 더했다. 논의 진행에 따라 삼성, 현대차, LG 등 국내 수출 대기업의 세금 부담에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9일 정부와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한국을 비롯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포함해 약 140개국에 이 같은 방식으로 글로벌 법인세를 적용하자는 내용의 공문을 전달했다. 현재 OECD 주도 ‘국가 간 소득 이전을 통한 세원 잠식(BEPS)’ 대응 협의체에 139개국이 참여하고 있는데, 미국도 이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 여론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OECD의 국제 법인세 제도 개선은 크게 △'고정사업장' 외에 새 과세권 배분 기준을 도입해 ‘시장이 있는 나라’에도 세금을 내게 하는 것(접근법 1) △다국적기업의 조세 회피를 방지할 ‘최저한세’를 도입하는 것(접근법 2)으로 나뉜다. 앞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언급한 법인세 하한선이 ‘접근법 2’ 관련 내용이라면, 이번 공문은 ‘접근법 1’에 해당한다.
접근법 1과 2는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디어는 아니다. 그동안 OECD가 주도해 온 일명 '디지털세' 논의의 두 축이었다. 다만 그간 논의에 미온적이던 미국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적극적인 자세로 돌변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앞서 접근법 1 관련 논의 초기에는 통상 구글, 아마존처럼 디지털 기업으로 인식되는 △온라인 플랫폼 △콘텐츠 스트리밍 등에 대한 과세를 논의하다가, 지난해 초 과세안의 기본 골격을 합의하면서 △가전ㆍ휴대폰 △자동차 등 소비자 대상 사업까지 과세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애초 미국은 글로벌 법인세를 IT 기업에만 한정하는 데 대해 반대하면서 논의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구글, 아마존 등 다국적기업의 세금을 시장이 큰 다른 나라(유럽 등)에 나눠줘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산업 분야를 한정하지 않은’ 미국의 제안이 받아들여질 경우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소비재 기업에도 과세권 배분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이 경우 해외 매출이 많은 삼성, 현대차, LG 등 국내 대기업이 외국의 과세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도 커진다.
기재부 관계자는 “미국의 주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할 때 이미 예상됐던 바”라며 “아직 큰 그림이 나오지 않은 만큼 적용 대상이 되더라도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