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15자… 국정원,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자료 공개

입력
2021.04.09 18:03
중앙정보부 조사받은 군인 3명 이름·출생지뿐
민변 "4년간 5번 재판했는데…" 자료 전면공개 요구
국정원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이행한 것" 반론

국가정보원이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관련 정보를 공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측이 정보공개 소송을 통해 확보한 것으로, 정부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관련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건 처음이다. 그러나 공개된 정보가 학살 사건으로 중앙정보부(국정원 전신)의 조사를 받은 세 사람의 이름과 거주지가 전부여서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변 산하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TF(베트남TF)'는 9일 오후 1시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이 제공한 자료를 공개했다. 1968년 2월 한국군 청룡부대가 일으킨 '퐁니·퐁넛 사건'과 관련해 중앙정보부가 이듬해 11월 청룡부대 소대장(중위) 3명을 조사하면서 작성한 문서인데, 세 사람의 이름과 출생지(본적지)를 적은 15자(최영언 부산, 이상우 강원, 이기동 서울)가 내용의 전부다. 퐁니·퐁넛 사건은 청룡부대가 베트남 중부 꽝남성의 퐁니·퐁넛마을 주민 74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민변 베트남TF는 국정원이 자료 공개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TF 소속 임재성 변호사는 "조사 대상의 사생활을 중대하게 침해할 여지가 전혀 없는 정보인데 이 정보 하나를 얻기 위해 3년 8개월 동안 5번의 재판을 해야 했다"며 "(원래 자료에 적혀 있던) 나머지 정보인 생년월일 등이 삭제된 사실도 확인된다"고 말했다.

퐁니·퐁넛 사건 생존자로 화상을 통해 기자회견에 참석한 응우옌 티탄(61)씨는 "모든 참상을 직접 겪은 생존자들이 원하는 것은 그날을 인정하는 진정한 사과"라고 말했다. 응우옌씨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이달 12일 두 번째 변론기일이 열린다.

민변은 2017년부터 국정원을 상대로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해왔다. 퐁니·퐁넛 사건에 대한 중앙정보부의 조사 내용이 담긴 문서 목록이 청구 대상이다. 대법원은 지난달 11일 국정원의 정보공개청구 거부 처분을 취소하는 원심을 확정했고, 소송 원고였던 임 변호사는 5일 이번 자료를 받았다.

민변 베트남TF는 국정원에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 관련해 중앙정보부가 당시 장병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록 일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임 변호사는 "국정원이 선제적 공개를 거부한다면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국방부와 외교부도 보유 중인 관련 자료를 전면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대법원 판결은 문서 내용이 아니라 문서 목록을 공개하되 생년월일(출생연도)를 제외하라는 내용이었고, 국정원은 이를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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