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전임 시장의 권력형 성 비위로 촉발된 '젠더 선거'였다. 그럼에도 거대 양당이 아닌 '성 평등' 정책을 전면에 내건 제3 후보들의 득표율은 2%를 넘지 못하는 한계를 확인했다. 이번 선거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 '정권 심판론' 탓이 크지만, 이슈 부각을 위한 후보 간 연대나 차별화 전략 부재 등이 고전 요인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개표 결과, '여성 혼자서도 안전한 서울'을 앞세운 김진아 여성의당 후보는 0.68% 득표율로 4위에 올랐다. 성 평등을 내세운 후보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1%에 미치지 못했다.
5~8위를 기록한 신지혜 기본소득당 후보와 신지예 무소속 후보, 송명숙 진보당 후보, 오태양 미래당 후보는 모두 득표율 0.5%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들 5명의 후보 득표율을 합산하면 1.91%(9만3,843표)였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녹색당 후보로 나선 신지예 후보가 1.67%(8만2,874표)를 기록하며 4위에 올랐을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전 선거에 비해 젠더 이슈를 앞세운 후보만 많았지 득표율은 큰 변화가 없었다. 이는 젠더 이슈가 우리 정치의 변두리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이번 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더불어민주당은 의도적으로 젠더 이슈를 회피했고 국민의힘은 여당을 겨냥한 정치 공세의 수단으로만 활용했다.
거대 양당 간 '정권심판론'과 네거티브 공방이 치열해질수록 성 평등 정책을 앞세운 후보들이 설 공간이 좁아졌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이번 선거는 최초의 여성 광역단체장이 나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정권심판론이 세게 불어 (성 평등을 내세운 후보들이) 저조한 성적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선거기간 5명의 후보들의 '나홀로 선거운동'이 아쉬웠다는 평가도 있다. 지지 기반과 메시지, 정책이 겹치는 데도 후보 간 연대나 협력이 이뤄지지 않아 소소한 돌풍조차 일으키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풀뿌리 민주주의' 단위부터 경험과 실력을 쌓아가는 장기 계획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청년후보들이 큰 선거에 뛰어들어 지속적으로 활동할 힘을 소진할까 우려된다"며 "긴 호흡을 갖고 기초의회 등에서 기반과 실력을 쌓아 차근차근 올라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이들의 시도는 선거의 본질적 의미를 지키고 유권자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전날 투표 종료 직후 발표된 방송 3사(KBS·MBC·SBS)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이하 여성 중 거대 양당이 아닌 제3 후보의 예상 득표율은 15.1%였다. 30대 여성에서도 5.7%로 적지 않았다.
제3 후보들은 이러한 표심에 희망을 엿보기도 했다. 신지혜 후보는 "거대 양당 심판 프레임 속 소수정당을 지지하기엔 큰 용기가 필요한 데도 2만3,000여 명의 시민이 저를 선택해줬다"며 "이번 선거를 통해 적어도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정치권의 해결 의지는 만들어진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