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소마다 '거리 두기' 행렬… 부동산·일자리·보육 선택포인트 다양

입력
2021.04.07 18:30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현장 가보니>
시민들, 방역 위해 거리 두고 장갑 낀 채 투표
"부동산 정책 변화 원해" "일자리 많아져야" 
투표함 봉인 훼손 등 일부 투표소 소동도

"정말 잘 뽑아야지요. 코로나19 때문에 너무 힘들었잖아요."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진 7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한 투표소에서 오전 8시쯤 투표를 마치고 나온 이모(93)씨는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보행보조기 없이는 거동조차 힘든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염려됐지만 이씨는 이른 아침 식사를 챙기고 홀로 투표장을 찾았다. 시내 다른 지역에 사는 자녀와 손자, 그리고 사정이 어려운 이웃의 미래를 위해서다. 이씨는 "좋은 시장이 뽑혀서 일자리도 많아지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도 형편이 조금씩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평일 투표에도 투표소 북적… 거리 두기 철저

이날 서울 25개구 투표장 곳곳에는 이른 아침부터 유권자 발걸음이 잇따랐다. 서울시민 표심을 대변하는 '족집게 선거구'로 꼽히는 양천구와 영등포구, '정치 1번지'로 꼽히는 종로구, 여야 텃밭으로 여겨지는 강북권과 강남권 가릴 것 없이 투표소 앞은 종일 북적였다.

코로나19는 투표소 풍경을 바꿔 놓았다. 투표장 안팎에서 유권자들이 간격을 두고 대기하는 바람에 줄은 다른 선거 때보다 더 길었다. 투표소 입구에는 비닐장갑이, 출구에는 비닐장갑을 버릴 수 있는 휴지통이 각각 비치됐다. 입구에서 체온을 재고 비닐장갑을 착용한 뒤 투표소 안으로 들어가는 다소 번거로운 절차에도 시민들은 대부분 방역지침을 철저하게 지키며 한 표를 행사했다.

부동산·일자리·보육… 코로나19 여파 속 다양한 민심

투표소로 모여든 유권자 표심엔 다양한 바람이 담겼다. 특히 지역을 막론하고 부동산 정책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전통적으로 야당 지지세가 큰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는 물론, 그간 서울시장 당선의 가늠자 역할을 했던 영등포구와 양천구에서도 이런 민심이 감지됐다. 오전 6시 30분 송파구 문정동에서 투표한 임모(63)씨는 "공무원과 정치인들이 땅 투기하는 마당에 (나는)집 한 채뿐인데 강남 산다는 이유로 세금을 너무 많이 낸다"며 "여야를 막론하고 부동산 문제를 잘 해결하는 후보를 지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악화하는 경제 사정을 감안해 후보자 자질 중 일자리·자영업 대책을 잘 꾸릴 수 있는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는 유권자도 적지 않았다. 도봉구 창동에서 투표를 마친 홍모(83)씨는 "손주들 생각하는 마음으로 청년실업 문제를 잘 해결할 것 같은 후보에 투표했다"고 밝혔다. 강남구 대치동에서 투표한 자영업자 박모(58)씨는 "자영업자가 잘살아야 나라가 잘산다는 말이 있다"며 "탁상공론으로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뛰어다닐 만한 후보를 뽑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보육 및 교육 현장의 혼선이 적지 않았던 만큼 3040세대 사이에선 안정적인 출산·육아 환경 조성을 새 시장의 핵심 역할로 꼽았다. 여섯 살 딸과 강북구 미아동 투표소를 찾은 '워킹맘' 박모(45)씨는 "맞벌이 부부가 부담없이 출산하고 안전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남구에서 투표한 직장인 노모(43)씨도 "주변에 아이 키우는 부모가 많아서 급식과 보육 공약을 유심히 봤다"고 말했다.

투표함 봉인지 떼고 온라인에서 후보 협박 소동도

이날 선거는 온종일 차분하게 진행됐지만 일부 투표소에선 소동도 빚어졌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5분쯤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아파트 단지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50대 남성 A씨가 투표함에 부착된 특수봉인지를 뜯었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봉인지가 제대로 부착돼 있는지 확인하려다가 떼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온라인상에서 후보를 둘러싼 협박글이 게재되는 일도 있었다.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선거 전날인 6일 오후 8시 35분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도검 사진과 함께 "우리는 7일 오세훈을 암살하겠다"는 글이 게시됐다. 용산서 관계자는 "글을 올린 사람을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윤한슬 기자
이승엽 기자
이유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