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독일군 운동화’ 신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더라고요. 많이 입는 조거팬츠나 후드티도 다 군복에서 나온 거고요. 자기도 모르게 군복을 입는 사람들이 많아요.”
요즘 유행하는 패션이 군복이라니. 군복은 패션의 범주가 아니지 않은가. 남보람(47)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이 반격했다. 그는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티셔츠나 재킷, 모자나 구두도 그 기원이 군복인 경우가 상당수다”라며 “기능과 실용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군복과 극단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패션은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최근 군복과 패션의 관계를 흥미롭게 살핀 책 ‘전쟁 그리고 패션Ⅱ’(와이즈플랜 발행)를 출간한 남 연구원과 전화로 만났다. 육군본부 군사연구소 전쟁사 연구장교였던 그는 2012년 미 육군군사연구소 교환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당시 옛 사진 한 장에서 군인들이 입은 군복과 부대마크만으로 6ㆍ25전쟁 때 활약했던 8240부대의 존재를 60년 만에 확인하며, 군복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후 본격적으로 군복을 연구해왔다.
그에 따르면 군복이 패션에 영향을 끼친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1차 대전 때 영국 군인들이 입었던 방수 코트에서 유래한 트렌치코트가 대표적이다. 누구나 입는 티셔츠도 미 해군들이 상ㆍ하의가 붙은 미국식 속옷(유니온 수트)을 잘라 입기 시작하면서 널리 퍼졌다. 간절기 대표 패션 아이템인 ‘사파리 재킷’은 아프리카에 주둔하던 영국군이 입었던 ‘열대 제복’에서 비롯됐다. ‘야상(야전상의)’의 원조는 미 육군이 2차 대전 때 개발한 전투복장이다. 청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는 ‘청ㆍ청 패션’도 1901년 미 해군의 작업복인 일명 ‘덩거리’에서 발전했다.
남 연구원은 “피카소가 즐겨 입은 초록색 줄무늬 티는 러시아 해병대 군복과 비슷하고, 샤넬이 승마할 때 입었던 바지는 독일군 기갑 장교들이 입었던 것이다”며 “피카소나 샤넬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입었듯이 우리도 은연중에 군복과 비슷한 옷을 많이 입는다”고 말했다.
군복은 어떻게 현대 패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을까. 남 연구원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패션과 군복이 나눠질 뿐 본류는 같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예컨대 샤넬은 미적인 관점에서 트위드 재킷에 주머니를 두 개만 달았고, 군대에서는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상의 재킷에 주머니를 두 개만 단다. 그는 “한쪽은 극도의 우아함을, 다른 한쪽은 극도의 실용성을 추구하다 보니 결과(주머니가 두 개 달린 재킷)가 같아졌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부족의 신발에서 영감을 얻은 ‘추카 부츠’도 군복과 패션의 관계를 잘 설명해준다. 신발을 신어본 영국군이 이를 활용해 전투화로 개발했고, 이를 패션회사가 미적 디자인을 강조한 ‘로 대중화시켰다.
남 연구원은 “군복과 패션은 목적과 용도는 다르지만 최상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같다”며 “군복이 최고의 실용성을 쫓다 보면 결국 최고의 미적 가치를 쫓는 패션과도 긴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군복 패션이 더 유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상 역사적으로 보면 대중들은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에 강력한 리더를 원했어요. 그런 리더십에 대한 욕구가 패션에도 반영됩니다. 앞으로 제복 패션이나 위장 패션이 길거리에 자주 등장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