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가 두려운 터키 대통령, '운하 반대' 퇴역 장성들 체포

입력
2021.04.06 14:20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은퇴한 해군 제독 10명을 잡아 들였다. 자신의 시책인 ‘이스탄불 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는 이유이지만, 실권이 없는 퇴역 군인들까지 체포한 건 누가 봐도 도를 넘은 처사다. 5년 전 군부 쿠데타로 권좌를 위협받았던 에르도안의 정변 알레르기가 과도한 조치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많다.

터키 검찰은 5일(현지시간) 이스탄불 운하 건설에 반대 성명을 낸 퇴역 해군 제독 10명을 체포했다. 전날 발표된 성명에 참여한 퇴역 군인은 103명인데, 검찰은 이들 중 14명을 주동자로 보고 있다. 체포되지 않은 나머지 4명에겐 자진 출두하라고 통보한 상태다.

이들은 성명에서 1936년 체결된 보스포루스 해협의 통행 자유에 관한 조약, 이른바 ‘몽트뢰 협약’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스탄불 시내를 가로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은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유일한 바닷길이다. 교통 요충지여서 역사적으로도 분쟁이 잦았다. 몽트뢰 협약은 해협 관리권을 터키에 줬다. 단 민간 선박의 자유로운 통행을 허가하고, 터키 정부가 간섭할 수 있는 범위도 러시아, 불가리아 등 흑해 연안국을 제외한 국가의 군함 통과로 제한했다. 퇴역 군인들은 “몽트뢰 협약은 그간 터키의 안보에 기여해왔다”며 협약 무력화에 반발했다.

하지만 몽트뢰 협약 준수는 에르도안의 숙원사업인 이스탄불 운하 건설과 상충된다. 그는 2011년부터 해협이 좁아 선박 통행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며 새 운하 필요성을 줄곧 주장해왔다. 협약 대상이 되는 건 보스포루스 해협뿐이라 운하를 만들면 터키 정부가 민간 선박 통행을 맘대로 주무르고, 통행료도 받을 수 있다. 운하 건설로 사실상 협약을 무력화하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그래도 단순한 성명 발표가 무더기 체포로까지 이어진 데는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2016년 발생한 군부 쿠데타가 핵심 배경으로 꼽힌다. 당시 일단의 장교가 일으킨 쿠데타는 정부군의 진압으로 실패했지만, 에르도안은 이후 자신의 권력을 넘보는 군부의 어떠한 도전에도 강경하게 대처하고 있다. 그는 이날 취재진에게 “쿠데타로 정부를 위협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해 이번 체포가 군부 집단행동의 싹을 미리 자르려는 조치임을 내비쳤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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