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바닥, 구부러진 빗자루만 쳐다본다

입력
2021.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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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급식지도를 마치고 돌아오니 교실이 소란스럽다. 교실바닥에는 지난주에 산 빗자루가 구부러진 채 널브러져 있다. 어찌 된 일인지 물으니 민수(가명)가 빗자루로 책상과 의자를 내리쳐서 빗자루가 망가졌다고 한다. 민수는 교실에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민수가 왜 그랬는지를 물었더니 모두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민수 혼자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뛰어다니며 책상과 의자를 두드리더니 빗자루를 던지고 나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이들에게 민수를 찾아 데려오라고 했더니 민수는 곧 나타났다.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민수를 상담실로 데려갔다. 민수가 숨을 고를 틈을 주고 천천히 물었다. 몇 차례 상담한 적이 있는 민수는 이번에도 역시 빗자루를 망가뜨린 사실을 금방 인정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왜 그랬니?”라고 물으면 입을 닫아버린다. 몇 차례 추궁하면 겨우 입을 여는데 그때마다 나오는 대답도 늘 같다. “그냥요”, “장난으로요”, “누가 …해서요” 중에 하나다. 이번에는 “그냥요”다. 민수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학칙에 따라 파손한 빗자루는 변상하고, 민수가 보호자에게 직접 상황을 설명하기로 했다. 민수는 내 앞에서 보호자와 통화하면서도 “청소하는데 아이들이 비켜주지 않아서 빗자루로 책상을 두드렸다”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별수 없이 내가 전화를 건네받고 통화를 마쳤다.

민수는 건우(가명)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건우는 개학 첫날부터 수업시간에 책상에 엎드려서 자던 아이다. 자는 건우를 흔들어 깨웠더니 눈을 부릅뜨고 “왜요? 안 잤다구요”라며 내게 대들었다. 건우는 욕을 입에 달고 산다. 급식시간에는 하도 반찬을 가리기에 어떻게든 맛이라도 보게 하려고 반찬을 담게 했더니 “안 먹는다구요. 확 던져버리고 싶네”라는 말을 내뱉어서 조리종사원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학교폭력에도 몇 차례 연루된 적이 있다. 보호자와도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지만 아직은 뾰족한 수가 없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두 아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겪는 피해도 크다. 아이들에게서 “선생님, 건우가요, 민수가요…”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다. 그때마다 민수와 건우를 불러서 이야기하고 학칙이 정한 조치를 취하지만 피해를 본 아이의 보호자로부터 하소연이 이어지기도 한다. 아이의 상태가 어떤 줄 알면서도 담임을 자청했던 터라 이 하소연이 부담스럽지는 않다. 아이들 곁에서 더 가까이 살피겠다고 말하면 하소연했던 보호자들도 서운한 마음을 금방 누그러뜨린다. 두 아이의 보호자도 하지 못하는 일을 담임교사라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 보내고 구부러진 빗자루를 한참 바라본다. 초임 시절 성구(가명)에게 빗자루 매질을 했던 부끄러운 일이 떠오른다. 부모의 이혼을 계기로 삐뚤어지기 시작한 성구를 어떻게든 바로잡겠다는 치기였지만 성구는 잡히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마음을 잡지 못한 성구는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참으로 아픈 기억이다. 나 혼자만 겪는 사연도 아니다.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배움으로부터 도망치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 것을 느낀다.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길을 열어주고 싶은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래도 놓을 수 없어 구부러진 빗자루를 들고 헝클어진 내 마음부터 쓴다.



정성식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