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대엽(57ㆍ사법연수원 21기)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가 다음달 퇴임하는 박상옥(65ㆍ11기) 대법관의 후임으로 제청되자 법조계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검사장 출신인 박 대법관의 자리를 천 부장판사가 이어받으면, 대법원 재판부가 전원 ‘비(非)검찰 출신 인사’로 채워지게 되는 탓이다. 이미 검사 출신 재판관이 한 명도 없는 헌법재판소, 수사기관인데도 ‘넘버 1ㆍ2’가 모두 판사 출신으로 꾸려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검찰 고유의 시선’이 사건 처리에 반영될 여지가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검찰 주변에선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과 무관치 않다고 보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대법원이나 헌재에 반드시 ‘검찰 몫’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반론도 상당하다. 오히려 판결의 다양성에 기여하는 순기능이 크지 않은데도, 그간 검찰이 ‘과잉 대접’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2일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천 부장판사가 전날 새 대법관 후보자로 임명 제청된 데 대해 “검찰의 기능 축소는 물론, 검찰의 시각을 우리 사회에서 배제하려는 현 정부 기조와 일맥상통한 인사”라고 평가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검찰개혁’을 밀어붙이는 정부 방침을 따른 결과라는 얘기다.
실제 과거엔 대법원 또는 헌재에 관례적으로 검찰 출신 인사가 꾸준히 등용됐다. 1980년대엔 검찰 출신 대법관이 2명씩 임명됐고, 이후에도 지창권 전 법무연수원장(1994~2000년 대법관 재임), 강신욱 전 서울고검장(2000~2006년), 안대희 전 서울고검장(2006~2012년)이 차례로 대법관에 올랐다. 헌재도 마찬가지다. 김희옥 전 법무부 차관(2006~2010년 헌법재판관 재임)과 안창호 전 서울고검장(2012~2018년)에 이어, 2011년 헌법재판관이 된 박한철 전 서울동부지검장은 검사 출신으론 사상 처음으로 헌재소장(2013~2017년)까지 지냈다.
검찰 안팎에선 대법원 또는 헌재 구성의 다양성 보장 차원에서, 수사 실무 등 형사사법체계에 밝은 검사 출신 인사가 포함돼야 한다는 당위론을 내세우고 있다. 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범죄 대응, 피해자 보호 등과 관련, 검찰 관점에서 최고법원 판단에 기여할 게 분명히 있다”며 “공수처 수뇌부도 ‘비검찰 출신’으로만 채워진 탓에 사건 이첩을 두고 논란이 불거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대법원과 헌재에서 ‘검찰 몫’이 사라진 현상을 반드시 검찰개혁을 우선시하는 현 정부 기조와 연결 지어 볼 문제는 아니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장을 지낸 김종민 변호사는 “대법관 발탁이 엘리트 법관 승진 코스가 되면서 ‘법관 출신’ 대법관이 늘어나고 검사 출신은 자연스럽게 배제돼 왔다”고 진단했다.
검찰 스스로 대법관을 배출할 만한 역량을 키우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법리보단 실무가 중시되는 검찰 조직 특성상, 법리 연구에 장기간 매진한 대법관 후보를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도 “검찰 권력이 비대했던 탓에 필요 이상으로 검찰 몫이 유지돼 온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오히려 중요한 문제는 학자나 변호사 등 재야 인사들의 진입 문턱을 낮추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현직 판사는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은 다수가 아닌 소수자 권리를 보장하는 판결을 하기 위한 것”이라며 “검사동일체, 관료제에 익숙한 검사 출신보다는 소수자를 대변할 수 있는 재야 인사들이 등용문이 넓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