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2,500조원짜리 초대형 ‘사회기반시설(인프라) 투자’ 사업을 ‘증세’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하면서 기업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세금 인상을 반길 기업은 없다. 하지만 낙후된 인프라 재건은 미국민의 숙원이다. 무작정 반대만 하다간 기업 이미지가 나빠지고, 그렇다고 증세에 찬성할 수 도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 경제전문매체 CNBC 보도를 보면 최근 미 기업 관계자들은 정부의 법인세 인상 방침에 입장을 정하지 못해 워싱턴 로비스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15일 법인세 인상안이 발표됐을 당시 성토만 무성했던 것과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그 때는 바이든 행정부가 법인세율을 기존 21%에서 28%로 올리겠다고 하자, 세금이 적은 나라로 사업을 이전하겠다는 강경 목소리까지 나왔다.
보름 만에 기류가 바뀐 건 정부가 법인세 증가분으로 인프라 투자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밝히면서다. 바이든 대통령은 8년에 걸쳐 2조달러(2,500조원)를 들여 도로, 교량 등 인프라를 정상 궤도에 올려 놓겠다는 구상이다. 막대한 일자리 창출은 덤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펜실베이니아주(州) 피츠버그에서 계획을 공식 발표하며 법인세를 더 걷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기업들의 반발을 의식한 듯 “아무도 불평해서는 안된다”는 으름장도 놨다.
바이든 대통령이 기업을 옥죄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인프라 재건은 지지 성향을 떠나 미국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개혁 정책이다. 그간 낡고 열악한 기반 시설로 인해 미국에선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2007년 미네소타주 고속도로에선 미시시피강 교량이 붕괴됐고, 2013년엔 미국과 캐나다를 잇는 워싱턴주 다리가 무너졌다. 4년에 한 번 국가 인프라 수준을 평가하는 미국토목학회는 올해 미국의 인프라를 C-로 평가했다. 평가가 시작된 1988년 이래 죄다 C, D 등급만 받았다. 심지어 바이든이라면 치를 떠는 공화당마저 인프라 개선 자체만큼은 문제 삼지 않는다. 기업들이 대놓고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로비스트는 매체에 “인프라 부양안의 발목을 잡으면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겠느냐는 문의전화가 계속 온다”며 기업들의 곤혹스러운 처지를 전했다.
때문에 세금 인상을 막을 수 없다면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현실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세율을 인상하되,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28%보다는 낮게 절충하자는 것이다. 몇몇 기업들은 이미 조 맨친 상원의원 등 중도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중이다. 맨친 의원은 여당 안에서 증세에 반대하는 대표 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