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났더니 한 낯선 남자가 거실에 있다. 누구냐고 묻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사위라고 밝힌다. 어쨌든 내 집에서 얼른 나가라고 화를 내자 자기네 집이라며 되려 얼굴을 붉힌다. 다른 날 일어났더니 또 다른 낯선 남자가 자신의 집에 있다. 그 또한 사위를 못 알아본다고 얼굴에 불쾌함이 서린다. 어느 날은 이런 일도 있다. 낯선 여자가 집에 들어와 살갑게 굴기에 누구냐고 물으니 자신은 딸이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사내는 일어나기만 하면 뒤틀린 세계가 무섭다. 아이처럼 왈칵 눈물을 터트리기도 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이 따로 있을까.
영화 ‘더 파더’는 알츠하이머 치매에 고통 받는 80대 노인 앤서니(앤서니 홉킨스)를 중심에 둔다. 환자 때문에 힘겨워 하는 가족보다 환자 내면에 초점을 맞춘다. 이 영화의 주요 미덕이다.
분명 누구 못지않게 빛나는 젊은 날을 보냈을 앤서니는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가늠할 수 없다. 자신은 은퇴하기 전 직업이 댄서라고 여기고, 간병인 앞에서 춤을 추는데, 딸 앤(올리비아 콜먼)은 “아버지는 엔지니어였다”고 말한다. 자기가 머물고 있는 런던의 집이 30년 동안 살아온 자택이라 굳게 믿지만, 앤은 아버지를 자신의 집으로 모신 것이라고 말한다. 급기야 앤서니는 딸이 자신의 집을 노리고 음모를 꾸민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관객도 의문부호를 키운다. 하지만 아버지를 향한 딸의 마음은 맑다. 앤서니는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밖에. “도대체, 나는 누구요.”
영화의 이야기 얼개는 단순하다. 치매 노인과 딸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짧게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가 품은 감정은 복합적이다. 공포가 깃들어있고 서스펜스가 심겨 있다. 유쾌함이 살짝 묻어나기도 하지만 종국엔 측은하고 슬프다. 프랑스 연극계의 스타 플로리안 젤러 감독은 단순한 이야기를 단순하지 않게 만드는 재능으로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영화는 젤러 감독이 쓴 동명 연극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젤러 감독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연기 장인들의 앙상블만으로도 상영시간 97분이 짧다. 홉킨스는 완고하면서도 천진난만하고 의심이 많은 노인을 이물감 없이 표현한다. 위스키 한 잔을 들이키고 짓는 표정에선 술의 농도가 느껴질 정도다. 콜먼은 혼란스러워 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물기 어린 눈빛 만으로도 역할을 다 한다. 오스카 수상자다운 연기들이다. 홉킨스는 1992년 ‘양들의 침묵’으로 남우주연상을, 콜먼은 2019년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로 여우주연상을 각각 받았다. 두 사람은 다음 달 25일 열리는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는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후보로 각기 올라 있다. ‘미나리’의 윤여정에게 콜먼은 강력한 경쟁자다. ‘더 파더’는 배우상 2개 부문 이외에도 작품상과 각색상, 미술상, 편집상 후보다. 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