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교과서 “일본은 아시아의 모범… 독도는 한국이 불법점거”

입력
2021.03.31 13:30
일본 정부, 고교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

일본 고등학생들이 내년부터 사용할 사회분야 교과서에서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 저지른 잘못들에 대한 서술이 대폭 줄어들었다.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이 사라지거나 약해진 것이다. 주변 국가를 침략한 역사는 물론,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과 관련한 내용이 크게 줄었다.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못박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서술이 포함됐다. 일본의 흑역사를 지우면서 제국주의 시절 과오를 근대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미화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동북아역사재단과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는 2021년도 일본 고교 검정교과서를 분석한 전문가 세미나를 31일 개최하고 이렇게 밝혔다. 하루 전 일본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고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분석한 결과다.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들은 내년부터 교육현장에서 쓰인다. 이번에는 역사총합(12종)ㆍ지리총합(6종)ㆍ공공(12종) 등 새롭게 신설된 3가지 사회분야 필수 교육과목 교과서 30종에 대한 검정도 이뤄졌다.


반성 사라진 역사교과서

문제는 역사교과서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대신 근대화, 공업화, 대국화에 대한 예찬이 강화됐다. 역사총합은 세계사와 일본사를 통합해 가르치는 과목으로 검정 이전부터 일본 학계에서는 교육방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세계사의 보편성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근현대의 보편적 현상’으로 기술한 것이다.

한국과 관련된 부분을 떼어보면 문제가 명확해진다. 먼저 일본의 침략을 ‘진출’로 표기한 교과서들이 검정을 통과하면서 1870년대 일본에서 일었던 조선 공략론, ‘정한론’에 대한 서술이 거의 사라졌다. 조선이 일본과 불평등 조약(강화도 조약)을 맺었던 배경인 운요호의 영해 침범을 두고도 ‘측량을 위해 파견됐다’ ‘측량을 포함한 시위행동’이라는 식으로 기술됐다. 또 러일 전쟁이 아시아 국가들의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다는 기존의 서술도 그대로 답습했다.


식민지 피해는 외면

일본이 아시아 식민지에 입혔던 피해도 거의 다루지 않았다.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를 주도했고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했다고 기술한 역사총합 교과서는 12종 가운데 1종뿐이었다. 대다수는 ‘여성이 전지로 보내졌다’ ‘조선인 위안부가 있었다’고 간략히 서술해 사건을 은폐했다. 위안부 문제를 다루기라도 한 교과서는 8종이었는데 그 가운데 3종은 전후처리와 보상의 측면에서 다뤘다. 위안부가 어떠한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해서는 외면한 것이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역시 은폐됐다. 일본 교과서 가운데 상당수는 2017년 이전에는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당한 조선인 숫자를 본문에 기술해 왔으나 2017년 검정과정에서 ‘통설이 없다’는 지적을 받은 뒤로는 모두 각주로 처리했다. 그리고 이번 검정에서는 각주에서도 기술이 사라지고, 학살 주체도 불명확하게 처리됐다.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

일본의 사회분야 교과서들은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한국의 실효지배를 부인하고 있다. 이번 검정에서는 모든 사회분야 필수과목 교과서들이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처음 기술했다. 일본 정부가 2018년 고등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및 해설을 개정하면서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로 기술하도록 못박은 이후 처음으로 시행된 검정 결과 발표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리총합 교과서(6종)는 모두 독도를 일본의 고유영토이며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썼다. 공공 교과서(12종)는 11종이 불법점거 또는 점거라는 표현을 썼다. 한국의 실효지배를 거론한 교과서에는 ‘점거’로 수정하라는 정부의 의견이 달렸다. 역사총합의 경우 사정이 나아서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표현을 쓴 교과서는 우익 교과서인 명성사 교과서뿐이었다. 나머지는 일본의 영토로 편입됐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불법점거란 표현 역시 명성사, 제국서원 두 곳의 교과서만 사용했다.






김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