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플로이드 사망' 재판 시작... "시민 보호 본질 잊어" vs "정당한 직무 수행"

입력
2021.03.30 18:30
증인 "플로이드, 가방 속 물고기처럼 죽었다"
2급 살인 혐의 유죄 확정 땐 최대 40년형
WP "배심원들, 피고 측 주장 안 받아들일 듯"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본질을 저버렸다”(검찰) “훈련한 대로 했을 뿐이다.”(변호인)

지난해 미국 사회는 인종차별 항의 시위로 들끓었다. 분노의 단초가 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사법처리 절차가 29일(현지시간) 시작됐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2급 살인 혐의로 기소된 미네소타주(州) 미니애폴리스 경찰관 조지 쇼빈의 단죄 여부를 놓고 첫 만남에서부터 격돌했다. 쟁점은 경찰관의 정당한 ‘직무 수행’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느냐다.

이날 미니애폴리스를 관할하는 헤너핀카운티 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제리 블랙웰 주 검사는 “경찰 배지를 착용하는 것은 큰 책임감을 수반한다”고 입을 뗐다. 이어 “적절하게 법을 집행하겠다는 맹세에도 불구하고 쇼빈은 플로이드에게 과도하고 불합리한 힘을 가해 생명을 앗아 갔다”고 역설했다. 블랙웰 검사는 배심원단에게는 “(무력의 사용은) 매 순간 평가돼야 한다”면서 “(처음에는) 합리적이었던 것이 나중에는 아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쇼빈의 행위가 명백한 규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플로이드는 지난해 5월 25일 경찰 체포 과정에서 숨졌다. 당시 쇼빈은 한 상점에서 플로이드가 20달러 위조지폐를 사용한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며, 비무장 상태인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누르며 압박했다. 플로이드가 “숨을 쉴 수가 없다”고 수 차례 호소했지만 쇼빈이 받아들이지 않아 끝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변호인 측은 이런 행위가 과잉 진압이 아니며 플로이드의 기저질환과 약물 중독이 죽음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에릭 넬슨 변호사는 “이야기에는 항상 양면이 있다. 이 법정에 정치ㆍ사회적 이유가 끼어들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넬슨 변호사는 “경찰은 사건 후 메스암페타민과 펜타닐을 찾아 냈고 이 마약류에서 플로이드의 유전자와 타액이 검출됐다”며 “쇼빈은 19년 경력 동안 훈련 받은 일을 정확히 수행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사건을 목격한 시민들도 여럿 법정에 출석해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911 신고를 접수한 제나 스커리는 “쇼빈 등 경찰관들이 플로이드를 무릎으로 누르는 모습을 보고 걱정이 됐다. 처음에는 화면이 멈춘 줄 알았다”고 말했다. 식당에 가던 중 플로이드의 사망을 목도한 도널드 윌리엄스도 “플로이드가 숨을 헐떡이고 코피를 흘렸다”면서 쇼빈의 과잉 행동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여러 사람이 경찰에 우려를 전했지만 쇼빈은 무릎에 힘을 주면서 플로이드의 목을 졸랐다. 그는 가방 속 물고기처럼 죽어갔다”고 묘사했다.

미 언론은 일단 쇼빈의 유죄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분위기다.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사설을 통해 “훈련 받은 대로 임무를 수행했다는 피고인 측 주장을 배심원들이 받아들일 것 같지 않다”고 전망했다. 유죄가 확정되면 쇼빈은 최대 40년 징역형에 처해진다. 폭스뉴스는 “1심 판결은 한 달 안에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며 “쇼빈의 범죄 경력이 없어 12년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쇼빈의 직접 증언 여부도 관심사다. 일간 뉴욕타임스는 법률 전문가들을 인용,“변호인단이 꺼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카드는 쇼빈이 증언대에 나와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쇼빈은 아직 법정 출석 의지를 내비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의 중요성을 반영하듯 이날 법정 주변에는 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어 경찰을 비난했다. 플로이드 유족과 변호인 벤 크럼프, 저명한 인권 운동가인 알 샤프턴 목사 등은 법정 입장 전 건물 앞에서 8분 46초간 무릎을 꿇었다. 당초 알려진 플로이드의 목이 눌린 시간이다. 검찰과 변호인 측 모두 플로이드가 ‘9분 29초’ 동안 목이 짓눌렸다는 부분은 인정하고 있다. 크럼프 변호사는 “(이번 재판은) 미국이 평등과 정의를 향한 여정에서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증명하는 국민투표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