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해체와 수사·기소권 분리

입력
2021.03.31 00:00
26면
과도한 통합은 독과점과 비효율 초래
폐해 큰 LH·검찰조직 손대더라도
고유기능 훼손하는 과잉 대응 피해야


옛날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복잡한 조직을 갖춘 근대적인 대기업이 처음 출현한 것은 19세기 말 미국에서였다. 경영사학자 알프레드 챈들러에 따르면 근대적 대기업은 시장과 기술의 변화에 대응한 대량생산과 대량유통의 결합 과정에서 처음 형성되었다. 통합된 대기업은 시장거래를 내부화하면서 정보상의 효율성을 높이고 거래 비용을 낮출 수 있었다. 또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기존의 생산기술, 유통망, 원자재 등을 활용한 범위의 경제를 실현하여 다각화를 도모할 수 있었다. 생산설비, 경영조직, 유통망 등에 대한 투자는 강력한 경쟁력으로 작용하였으며, 선발주자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과도한 통합에는 부작용도 따랐다. 첫째는 독과점의 폐해이다. 예컨대 1911년 반독점법 위반으로 해체될 때 무려 90%의 시장을 점유했던 미국의 스탠더드 정유회사는 우월한 지위를 남용해서 시장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를 일삼았다. 둘째는 과도한 통합으로 인한 경직성과 비효율성이다. 강판 생산에서 자동차 판매까지 생산과 유통의 모든 과정을 수직적으로 통합했다가 1930년대 대공황의 충격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GM과 크라이슬러에 추격을 허용했던 포드 자동차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새삼 과거사로부터 통합된 기업조직의 공과를 되새기는 것은 최근 불거진 공공기관 분리 문제 때문이다. 내부 정보를 이용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는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정부는 그 재발방지책으로 LH를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직 자체의 분리는 아니지만 중대범죄수사청의 설립안도 검찰이 가지고 있던 수사와 기소의 권한을 분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수직적 결합의 해체로 볼 수 있다.

맡겨진 힘과 정보를 이용하여 공공기관이 조직의 이해나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 방안으로 공공기관 조직을 분리하거나 바꾸는 일은 더 신중하게 논의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해당 기관 본연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게 만드는 조직 변화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근대적 대기업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조직상의 분리는 양날의 칼과도 같아서 거대화된 조직의 부작용을 제거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통합된 조직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둘째, 통합의 해체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대한 완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조직의 분리는 독립된 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가져오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소통과 협력을 어렵게 하고 기능과 업무의 중복을 초래할 수 있다.

셋째, 전환과정의 혼란과 공백을 줄일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한 조직은 문서상의 법령이나 규정뿐만 아니라 인적인 관계, 조직문화, 비공식적 관행 등의 정립을 통해 완성되는 만큼, 새로운 조직이 정착되고 제대로 기능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끝으로, 국민이 부여한 권한에 더 무거운 책임을 지우고 이를 저버린 개인을 강하게 처벌하는 대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해충돌방지법조차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현실부터 바꾸어야 할 것이다.

힘 있는 공공기관의 일탈을 막는 일은 중요하다. 문제가 생긴 기관의 해체나 분리는 빠르고 가시적인 방안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결과로 범죄자를 잡아서 처벌하는 법집행기관의 역할이나 공공주택을 원활하게 공급하는 LH의 기능이 훼손된다면 그 부담은 국민의 몫이 될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 문제를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풀어가길 희망한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