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 운하를 가로막아 세계적인 물류 대란을 일으킨 대형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호’가 마침내 구조됐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거리 뱃길도 다시 뚫렸다. 23일 선박이 좌초된 지 일주일 만이다. 글로벌 해운업계는 일단 한숨을 돌렸으나, 그간 화물 운송 차질로 생긴 천문학적 손해를 놓고 ‘보상 문제’가 새로운 논쟁 거리로 떠오를 전망이다.
29일(현지시간) 수에즈운하관리청(SCA)에 따르면 에버 기븐호는 이날 오전 4시 30분쯤 처음으로 일부 부양에 성공했다. 밀물로 운하 수위가 2m 이상 상승하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세계 각국 전문가들이 뭉친 구조팀은 예인선 10여 척을 동원해 이른 새벽부터 배를 끌어당겼다. 제방 양쪽에 박혀 있던 선수와 선미가 빠져나오면서 배가 물에 떴고, 배의 방향도 물의 흐름과 나란하게 일직선이 됐다. 오후에 완전히 부양한 에버 기븐호는 운하 중간 지점에 있는 대기 구역인 그레이트비터 호수로 자체 엔진을 이용해 떠났다.
에버 기븐호는 무게 22만4,000톤, 길이 400m, 폭 59m에 이르는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으로 중국에서 출발해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향하던 길에 수에즈 운하에서 멈춰 섰다. 이집트 당국은 선박을 수로에서 꺼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뱃머리가 박혀 있던 제방에서 모래와 진흙 2만7,000㎥를 퍼냈고, 18m 깊이까지 땅을 팠다. 예인선 작업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좌초를 무릅쓰고 9,000톤에 달하는 평형수까지 빼내 선박 무게도 줄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현장 영상을 보면 선박 뱃머리가 방향을 틀면서 운하가 열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취재진이 배가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에버 기븐호가 수로 중앙에서 자체 동력으로 그레이트비터 호수로 이동했다”고 보도했다. 유가도 즉각 반응했다. 로이터는 “부양 소식에 브랜트유 가격이 배럴당 1달러 하락한 63.67달러에 거래됐다”고 전했다.
수에즈 운하는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다. 오사마 라비 SCA 청장은 “운하 통행을 즉각 재개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집트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선체가 부양하면 수에즈 운하는 24시간 운영될 것”이라며 신속한 물류 정상화를 약속했다. SCA는 사흘 반 정도면 선박 정체가 완전히 해소될 것으로 예상했고, 세계 최대 선사인 머스크는 최소 엿새 이상 걸릴 거라 내다봤다.
물류는 뚫렸지만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피해 보상 문제다. 세계 해상 물류 15%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다. SCA에 따르면 에버 기븐호 좌초로 인해 컨테이너선과 벌크선, 유조선 등 최소 369척이 수에즈 운하 인근에서 발이 묶여 있다. 대기 선박에만 120억 달러(약 13조5,000억 원)어치 화물이 실려 있다. 이집트 정부도 통행료를 받지 못해 날마다 1,400만 달러(약 158억 원)에 달하는 손해를 봤다.
영국 해운전문지 로이드리스트는 이번 사태로 멈춰 선 해상 물동량이 하루에만 90억 달러(약 10조2,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약 71조 원가량 물류 수송에 차질이 빚어진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수억 달러 보상금이 지급될 수 있으며 이해당사자 간 책임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운항 중단된 선박에 실린 화물 소유주들이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험사는 에버 기븐호 선주에게 손실 보상을 요구하고, 다시 선주는 보험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최악의 경우 선박회사뿐 아니라 보험사까지 줄도산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