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이것 봐. 온통 뿌옇네. 하늘이 아예 안 보여!"
전남 무안군에 사는 A(43·여)씨는 29일 출근한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흙먼지 자욱한 바깥 풍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남의 미세먼지(PM10) 농도가 1,356㎍/㎥로 전국 최고를 기록했던 터다. 미세먼지 '매우나쁨' 기준은 151㎍/㎥이다. 평소 남도의 파란 하늘만 보던 A씨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스크를 써도 소용 없으니, 밖으로 절대 나오지 말라.” 친정엄마 등 가족에게 전화 돌리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29일 중국·몽골에서 엄습한 모래먼지가 대한민국을 숨 막히게 했다. 수도권 등 서부지역을 강타한 황사는 동부로 확산하다 오후에는 결국 태백산맥을 넘었고, 이어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청정 제주까지 삼켰다. 전국 17개 시도에 '황사경보'가 일제히 내려졌다. 전국에 경보가 내려진 것은 2015년 황사 위기경보제 도입 후 처음 있는 일이다. 황사경보는 시간당 평균 미세먼지(PM10) 농도가 800㎍/㎥ 이상인 상태가 2시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내려진다. 사상 최악의 황사에 사람들은 몸을 웅크렸고, 자영업자들은 울상 지었다.
분지 대구도 이날 오전 11시 기준 평균 미세먼지 농도가 1,174㎍/㎥로 치솟았다. 대구 어디서나 보이는 팔공산도 이날만큼은 보이지 않았다. 각 가정은 전날만 해도 활짝 열어뒀던 창문을 닫고, 공기청정기를 총가동했다. 일선 초등학교는 실내수업 후 학생들을 일찍 귀가시켰고, 동네 놀이터는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한 시민은 “오늘만큼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의 풍경 같았다”고 했다. 오후 4시가 돼서야 미세먼지가 기류를 타고 남하해 372㎍/㎥로 떨어졌다. 대구시 관계자는 "분지로 된 지형 탓에 황사와 미세먼지가 잘 빠져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사가 남하하며 울산∙부산 하늘도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옜다. 부산에서는 광안대교가 흙먼지 사이로 종적을 감췄고, 울산에서는 황사에 대기이동 정체 현상이 나타나 기온이 18도를 웃돌기도 했다.
앞서 중국·몽골발 황사를 가장 먼저 맞닥뜨렸던 인천과 서울도 아침부터 온종일 잿빛이었다. 미세먼지 농도가 인천 725㎍/㎥, 서울 639㎍/㎥를 기록, 가시거리가 1㎞가 채 안 됐다. 송도 동북아무역센터와 N서울타워가 뿌연 먼지에 숨었다.
청정지역 제주도 미세먼지 농도가 1,203㎍/㎥까지 치솟았다. 평소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졌던 한라산과 오름도 이날만큼은 자취를 감췄다. 제주도민 김지현(50)씨는 “20∼30분 외출했는데 눈과 코가 간질거리고, 목이 답답했다”며 “이런 황사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의 시름은 이날 더욱 깊었다. 광주시 금남로 카페 주인 박모(52)씨는 "평소 점심 때 20명 정도는 다녀가는데 오늘은 손님이 단 한 명도 없다"고 했다. 경기도 대표 관광지인 파주 임진각의 평화곤돌라 관계자도 “오늘 방문객이 반 토막 났다”고 말했다.
희뿌연 하늘은 당분간 더 이어질 것으로 예보됐다. 국립환경과학원은 30일에도 대기 정체로 미세먼지 축적돼 전 권역에서 미세먼지가 '나쁨' 농도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맑은 하늘은 다음 달 2일쯤에야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환경과학원은 "1일부터 풍속이 강해지겠다"며 "1일 수도권·강원·영서·세종·충북·충남·대구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높음(36㎍/㎥ 이상)'을 보이겠고, 2, 3일에는 대기 확산이 원활해지면서 전국에서 '낮음(0~35㎍/㎥)'을 나타낼 것"이라고 예보했다. 4일은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청명(淸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