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걸프전을 앞두고 미국이 한미동맹의 향방과 연계해 걸프전 지원을 압박하는 분위기가 담긴 외교문서가 공개됐다. 특히 미국 무기 구입을 한미동맹의 징표로 여기는 미 당국자의 인식도 드러나 눈길을 끈다. 한미동맹이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키는 대목이다.
□ 30년 비밀 유지기한이 끝나 29일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미 당국자들은 1990년 12월 방미한 반기문 당시 외교부 미주국장을 만나 한국의 걸프전 기여를 독촉했다. “한미관계가 껄끄러워질 수 있다”는 압박성 발언도 나왔다. 흥미로운 건 더글러스 팔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보좌관의 발언이다. 그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소련 및 중국과의 관계에 치중한 나머지 미국과의 관계나 페르시아만 사태 해결을 위한 지원에는 소홀하지 않나 하는 인상을 가졌다”며 “한국 정부의 P3C 대잠함 초계기 구매 결정 등은 우리의 그런 우려를 씻어주었다”고 말했다. 당시 노태우 정부가 북방정책을 추진하며 소련 및 중국과 관계 개선을 도모하던 상황을 견제하면서 한국이 대잠초계기 입찰에서 미국 무기를 선택한 것을 칭찬한 것이다.
□ 팔 보좌관의 발언에 깔린 함의는 ‘한미동맹에 대한 한국의 헌신을 무기 구입으로 증명하라’는 것에 다름없다. 이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30년 전보다 미중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중관계에 대한 미국의 우려 수위는 더욱 높아졌고 무기 구매 요구는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 카드까지 꺼내며 대놓고 무기 구입을 압박했다.
□ 한국은 미국 무기의 최대 고객 ‘톱3’에 포함돼 있다. 국방기술품질원의 2019년 연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67억3,100만 달러의 무기를 수입해 사우디아라비아(106억3,900만 달러), 호주(72억7,900만 달러)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미국은 한국의 무기 수입 비용 중 53%나 차지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 복원을 내세우고 있지만 미국의 요구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중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의 의심을 달래기 위해선 더 많은 무기 수입 비용이 들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