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미얀마 양곤 시위대 앞에 수류탄이 떨어졌다. 위기를 직감한 샤인 하텟 아웅(20)은 서둘러 수류탄을 집었다. 하지만 이미 4초가 흐른 수류탄은 그의 오른손에서 폭발했다. 전쟁터에서나 사용될 법한 집단 살상 무기 수류탄이 양곤 도심에서 터진 것이다.
기자가 꿈이었다는 아웅은 군의 시신 탈취를 우려해 29일 서둘러 화장됐다. 장례식을 지켜본 양곤 시민들은 "인생은 영화 같지 않았으나 그의 마지막은 미얀마의 '슈퍼 히어로'였다"고 입을 모았다. 그의 모습은 영화 '캡틴 아메리카' 주인공 사진과 합성돼 수많은 추모글과 더불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울리고 있다.
미얀마 군의 만행이 시위대 진압을 넘어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양상으로 악화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은 버린 지 오래, 군의 광기가 미얀마를 아비규환으로 만들고 있다. '고무총 발포→실탄 사용→조준 및 저격 사격→기관총 난사→시신 탈취→시신 방화→수류탄 투척'으로 이어지는 미얀마 군의 잔혹 행위에 전 세계가 분노하고 있다.
미얀마군의 수류탄 사용은 일일 최대 사망자(114명) 수를 기록한 '국군의 날(27일)'부터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양곤 지역에선 수류탄 폭발로 인한 사상자가 속출했고, 만달레이 등 다른 주요 도시에서도 군이 투척한 불발 수류탄이 발견되고 있다. 양곤 북부의 한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현지인은 "음향폭탄과 총상, 수류탄 부상의 차이는 육안으로도 쉽게 구분된다"며 "주로 시위대 맨 앞에서 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청년들을 향해 수류탄이 날아오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군부의 무기 사용 강도는 전시를 방불케 한다. 문제는 상대가 변변한 방어 무기도 갖추지 않은 시위대이자, 시위와는 무관한 시민들이란 점이다. 쿠데타 발발 초기인 지난달 8일 물대포와 고무총 등 시위진압용 무기만 주로 사용했던 군은 첫 실탄 피격 희생자가 발생한 지난달 9일부터 무차별 총격에 나섰다. '피의 일요일(2월 28일)'에 조준 및 저격 사격 정황이 포착되더니 '검은 수요일'(3월 4일) 이후에는 소형 기관총까지 현장에 투입했다. 이달 중순까지 실탄 발사 사실조차 부인하던 군은 이제 대놓고 중화기까지 꺼내 들었다. 수류탄 투척에 이어 전날 양곤 등에선 장갑차와 기관장총이 설치된 소형 트럭이 도심을 순찰하는 모습이 연이어 목격됐다.
학살 방법도 더 악랄해지고 있다. 이날 SNS에는 군인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지나던 청년 3명을 향해 '묻지마' 사격을 가해 즉사한 동영상이 급속히 퍼졌다. 바고 지역에선 전날 시위 중 사망한 학생의 장례식장에 군이 난입해 민간인들에게 총기를 난사했다. 사가잉주와 양곤에선 민간인 복장으로 위장한 군병력이 병원으로 들이닥쳐 간호대생 등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상 입은 사람을 불구덩이에 던져 태워 죽이기까지 했다. 젖먹이와 어린이, 행인, 집에 있던 주민 등 가리지 않고 학살하고 있다.
시민들은 여전히 저항하고 있다. 청년층은 게릴라 시위를, 농민들은 마을 단위로 소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샨주 등에서 최소 8명의 시민이 또다시 군의 총탄에 사망했다. 주요 시민단체들은 이날 카렌민족연합(KNU) 등 소수민족들에게 미얀마 국민을 보호해 달라고 촉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절대적으로 너무나 충격적"이라며 "내가 받아온 보고를 토대로 볼 때 끔찍하게도 많은 사람이 완전히 불필요한 이유로 살해됐다"고 미얀마 사태를 언급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분노는 미얀마의 비극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미얀마정치범지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1일 쿠데타 이후 전날까지 희생된 시민은 459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