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 참정권 운동은 1960년대 본격화했지만, 씨앗이 움튼 건 그보다 약 100년 전이었다.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가 1867~1895년 비노예 흑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했고, 노예 출신인 미연방 해군 예비역 로버트 스몰스(Robert Smalls, 1839.4.5~ 1915.2.23)가 주 상원의원과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사실도 아는 이가 드물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뷰퍼트(Beufort)에서 노예로 태어난 스몰스는 12세 때 항구 도시 찰스턴(Charleston)에 노동자로 파견됐다. 노예주가 잉여 노예들을 다른 데 취직시켜 급여를 챙기던 관행에 따른 거였다. 스몰스는 선박 항해 및 수로 안내(도선) 기술을 익혔고, 남북전쟁(1861~1865)이 발발하면서 남부 전함 '플랜터(Planter)'호의 도선사로 차출됐다. 물론 군수품 등 물자 선적, 하역 등 잡역에도 동원됐다.
1862년 5월 그는 다른 노예들과 함께 대포와 화약을 선적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루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밤이 되자 백인 군인들은 뭍의 숙소로 돌아갔고, 스몰스와 노예들은 배에 남았다. 다음날 새벽, 스몰스는 노예들을 선동해 배를 최고 속도로 몰아 인근 항구에 대기 중이던 가족과 친구들을 승선시킨 뒤 백기를 달고 북부 연방군이 주둔한 '자유의 항구'에 입항했다. 무기를 잔뜩 실은 전함 외에도, 그가 지닌 남군 작전 정보는 북군에게 대단히 값진 거였다고 한다. 동승한 흑인들은 곧장 자유민이 됐다. 스몰스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액수인 월급 150달러를 받으며 북군 해군 장교로 복무했고, 남군은 그의 '머리'에 4,000달러 현상금을 걸었다.
1867년 어느 날 그가 동료 병사들과 함께 필라델피아에 입항해 전차에 타려 하자, 승무원이 흑인 자리로 옮기도록 한 일이 있었다. 백인 전우들은 그와 함께 승차를 포기하고 빗길을 걸었다고 한다. 퇴역 후 그는 주 상원을 거쳐 5년간 연방 하원의원으로 일하며 차별 폐지에 헌신했고, 지역 세관장으로 약 20년을 재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