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시간 늘고... 미세먼지 속에선 꿀벌도 괴롭다

입력
2021.04.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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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분광학과 광기술 분야를 연구하는 고재현 교수가 일상 생활의 다양한 현상과 과학계의 최신 발견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조망합니다

봄철이면 수시로 하늘을 뒤덮는 미세먼지와 황사는 이제 우리 일상의 일부분이 된 지 오래다. 생동하는 봄기운을 삼키려는 듯 대기를 가득 채운 뿌연 먼지는 때로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특히 크기가 2.5㎛(1㎛는 100만분의 1m)보다 작은 초미세먼지는 호흡기 질환을 유발해 노약자의 건강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봄날의 전경을 뿌옇게 만들어 시각적 불쾌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미세먼지가 인간에게만 악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다. 다른 생명체 역시 미세먼지의 습격 속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다. 오늘 글의 주인공은 식물의 수분(受粉)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벌이다. 20세기 말부터 기후 변화나 농약의 과다 사용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각 대륙의 벌의 개체수가 급감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져 왔다. 최근 국내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미세먼지는 벌의 먹이 채취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벌이 먹이를 찾아 나서는 행동과 미세먼지 사이의 관계는 무엇일까?

햇빛과 대기의 합작품, 하늘의 편광

벌을 포함한 다양한 곤충들이 하늘을 나침반처럼 이용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확히는 햇빛이 지구의 대기와 반응해 산란되며 만드는 빛의 편광(偏光) 패턴을 이용한다. 따라서 곤충들이 항해를 위해 하늘을 이용하는 원리를 이해하려면 빛의 편광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편광은 파동의 보편적인 성질 중 하나다.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파동의 예로 편광을 설명해 보자.

가로 방향으로 놓인 긴 줄의 왼쪽에 서서 줄 끝을 붙잡고 위아래로 흔들어 보자. 줄의 파동은 위와 아래로 진동하면서 오른쪽으로 진행해 나갈 것이다. 잔잔한 호숫물에 던진 돌멩이가 만드는 물결파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퍼져 나간다. 이처럼 파동이 진행하는 방향에 대해 줄이나 물 같은 매질(medium)이 수직으로 진동하는 파동을 횡파(橫波)라 부른다. 빛도 횡파다. 그래서 빛은 자신이 진행하는 방향에 대해 수직으로 진동하는 전기장과 자기장이라는 두 성분을 가진다.

줄의 파동에선 줄이 진동하는 방향이 파동의 편광을 나타낸다. 위아래로 줄을 흔들면 수직 편광이 탄생한다. 줄이 진동하는 방향은 우리가 줄을 흔드는 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다. 줄을 붙잡고 가로 방향으로 흔들거나 45도의 각도로 기울어진 상태로 흔들면 수평 편광이나 45도 편광을 만들 수 있다. 빛도 마찬가지다. 빛을 구성하는 성분 중 전기장이 진동하는 방향이 빛의 편광 상태를 규정한다.

태양에서 지구로 오는 빛은 모든 방향으로 진동하는 편광 성분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그런데 이 빛이 지구 대기권으로 들어와 공기 분자들과 반응하면서 일정한 편광의 패턴을 띠게 된다. 이는 햇빛에 반응하는 공기 분자들이 일으키는 빛의 산란이 만든 결과다. 우리가 맑은 날 파란 하늘을 쳐다보면 수직으로 진동하는 편광 성분이 수평의 편광 성분보다 더 많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작가들이 사진기에 사용하는 편광 필터는 특정 방향의 편광을 가진 빛만 통과시킴으로써 파란 하늘의 밝기를 조절하는 데 사용된다. 이를 통해 구름과 파란 하늘의 대비를 증가시키며 더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하늘이라는 나침반, 편광을 이용하는 벌

공기 분자의 산란에 의해 만들어지는 편광 패턴은 태양을 중심으로 대칭적이다. 이 패턴은 태양이 동에서 서로 이동하는 것을 따라 함께 변한다. 따라서 태양을 직접 보지 못하더라도 파란 하늘에 보이는 편광의 패턴을 확인하면 태양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이 편광 패턴은 편광을 감지하는 동물들에게는 하늘에 펼쳐져 있는 천연 나침반과 같다.

벌을 포함한 다양한 생명체는 빛의 편광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 이들은 감지한 편광 패턴을 항해에 이용하기도 하고, 움직임을 감지하거나 산란할 장소를 찾는 데도 활용한다. 벌의 눈은 모두 다섯 개인데, 좌우에 배치된 큰 겹눈과 이마 쪽에 세 개의 작은 눈이 존재한다. 특히 겹눈의 위쪽에 빛의 편광을 감지할 수 있는 영역이 위치한다. 이 능력을 이용해 벌은 태양이 지구의 대기에 만드는 편광의 패턴을 확인해 태양의 위치를 확인하고 이동을 위한 나침반으로 활용한다.

편광의 패턴을 인지한 꿀벌은 벌집 앞에서 동료들에게 8자 모양의 춤을 춤으로써 꿀이 풍부한 꽃들이 위치한 방향과 그곳까지의 거리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편광을 인지하는 꿀벌의 능력은 매우 탁월해서 하늘 대부분을 구름이 덮고 있어도 파란 하늘 조각이 약간이라도 보이면 그곳의 편광 패턴을 인식해서 구름에 가려진 태양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심지어 구름이 하늘 전체를 덮더라도 (엄청나게 두터운 구름이 아니라면) 희미하게 남아 있는 편광 패턴을 인식해 태양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벌처럼 숲 속을 나는 곤충은 식물 사이로 보이는 작은 하늘에서 오는 정보를 이용해 비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런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유엔환경계획에 의하면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작물 100종의 70% 이상이 꿀벌의 수분에 의존해 번식하고 생산된다. 인간의 식량 생산에 있어서 벌을 포함한 다양한 생명체가 수행하는 수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화훼 산업의 경우 곤충의 수분에 의존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따라서 벌들의 개체수 감소나 수분 능력의 저하는 인류와 생태계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미세먼지 속 벌의 괴로움

최근 국내 연구자들이 중국 연구팀과 함께 베이징의 양봉장에서 봄철 미세먼지와 황사가 벌들의 채취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 발표한 바 있다. 400마리의 벌에게 전자 태그를 달아 수행한 이 연구에 의하면,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가 증가함에 따라 벌들이 채취를 위해 비행하는 시간이 맑은 날에 비해 현저하게 증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먼지가 가장 심한 날에는 공중 체류 시간이 32분이나 늘었는데, 맑은 날 비행 시간에 비해 1.7배 정도 증가한 것이다. 더욱이 미세먼지가 사라진 후에도 벌들의 늘어난 체류 시간이 바로 정상으로 회복되지는 않았다.

미세먼지는 대기를 통과해 산란하는 햇빛에 새겨진 편광 패턴을 흐트러뜨리는 주범 중 하나다. 대기권에서 공기 분자들과 반응한 햇빛에 새겨진 편광 패턴이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먼지를 만나면 빛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편광 패턴이 희미해진다. 따라서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질수록 편광 패턴이 점점 사라지며 벌들의 항해 능력을 떨어뜨리고, 벌들이 먹이를 찾는 시간도 당연히 늘어나게 된다.

연구팀은 비슷한 농도에서는 먼지 크기가 작을수록 벌들의 비행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도 발견했다. 이는 먼지 입자의 크기와 개수 사이의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먼지의 형상을 구라고 가정하면 먼지의 부피는 구의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대기 중 미세먼지의 농도가 동일하다면 먼지의 크기가 10분의 1로 줄 때 먼지의 개수가 1,000배 늘어난다. 개수가 급증하면 빛을 퍼뜨리는 정도가 심해지니 편광 패턴이 무너지는 정도도 증가하는 것이다.

이런 악영향은 꿀벌이 수행하는 중요한 기능, 즉 식물의 수분과 번식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이 자명하다. 게다가 미세먼지와 그 속의 오염물질이 꽃이 꿀벌을 유혹하는 데 사용하는 꽃향기의 농도를 떨어뜨리거나 심지어 벌의 생리적 기능도 저하시킨다는 실험적 증거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미세먼지는 바람을 타고 나라와 나라, 심지어 대륙과 대륙 사이도 넘나드는 존재라 이들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한 나라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미세먼지 속에선 인간도 괴롭지만 꿀벌도 괴롭다. 꿀벌의 항해 능력이 떨어지고 식물의 수분에 영향을 미치면 결국 화훼 농업을 포함한 농업 및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그 결과는 우리 인류에게 그대로 돌아올 것이다. 확실한 사실은 지구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은 없어도 상관없으나 벌이 사라진다면 생태계가 심각히 훼손될 것이라는 점이다. 기후 위기를 포함한 전 지구적 변화에 국제적 협력과 대응이 더욱 절실해 보인다.



고재현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