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짜리 조형물 공사 현장에서 화석 '와르르'

입력
2021.03.29 20:10
10면
포스코, 포항 환호공원에 세계적 작품 기부
터 닦는 작업하다 고생물 화석 무더기 출토
문화재청 "공사 중단하고 전문가 조사하라"
부지 기부한 포항시 사전조사 소홀 도마에

포스코가 100억 원을 들여 경북 포항에 조형물을 설치하는 공사 현장에서 2200만년 전 고생물로 추정되는 화석이 무더기 발견됐다. 기업 이익 사회 환원 취지의 세계적 작품 기증 계획 차질은 물론, 화석 발굴 비용까지 포스코가 떠안아야 할 처지가 됐다. 사업에 제동이 걸리자 치밀한 판단 없이 부지를 제공한 포항시도 비판받고 있다.

29일 포스코건설 등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포항시 북구 두호동 환호공원 내 조형물 설치 현장에서 화석이 발견됐다. 진흙이 굳은 이암(泥巖)에 도장을 찍은 듯 나뭇잎 등이 선명하게 남은 화석이었다. 시공을 맡은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직원들이 길을 내기 위해 흙을 파내던 중 화석을 발견했다”며 “공사를 즉각 중단한 뒤 포항시와 문화재청에 이 사실을 알렸다”고 말했다. 해당 사업은 포항시가 부지를 제공하고 포스코가 작품을 제공하는 방식의 공동 사업이다.

신고를 접수한 문화재청은 한 달여 만인 지난 23일 “화석이 나온 지역을 보존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회신했다. 문화재청은 공문에서 "지질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참관조사를 거친 뒤 화석 산출 양상이 뚜렷하거나 중요 화석으로 확인되면 발굴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포스코와 포항시 계획엔 제동이 걸렸다. 당초 오는 8월 말 완공이었다. 이들은 문화재청 회신을 받는 데만 한 달을 허비한 데 이어, 화석 가치를 가늠하기 위한 참관조사에 최소 6개월을 더 써야 한다. 만약, 조사 결과 보존 가치가 높은 것으로 나올 경우 인접지까지 보존구역으로 묶인다. 이 경우 사업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지질분야 전문기관과 용역조사 계약을 체결,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공사를 중단해야 해 8월 말 완공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포스코가 설치하려고 한 작품은 독일 뒤스부르크 앵거공원에 있는 롤러코스터 형태의 세계적인 조형물 '타이거 앤드 터틀 매직 마운틴(Tiger & Turtle - Magic Mountain)'이다. 한때 철강산업으로 번창했던 뒤스부르크는 제철소가 빠져나가면서 급격히 쇠퇴했으나, 해당 조형물이 생긴 뒤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 관광도시로 부활하자 포스코와 포항시도 포항을 철의 도시 관광지로 변신시키겠다며 손 잡고 야심 차게 나선 사업이다. 이들은 독일 조형물을 만든 해외작가 2명을 섭외했고, 작품 제작에 들어갔다. 설계상 크기는 독일에 설치된 기존 조형물(높이 18m, 길이 220m)보다 더 크다.

조형물 공사가 중단되자, 치밀한 판단 없이 부지를 제공한 포항시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시가 소유한 환호공원 일대는 '두호동 화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지난 2017년 9월 국내에서는 9번째, 경북에서는 3번째로 동해안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포항시도 이곳을 “고생물들의 화석을 간직한 명소”, “한반도와 붙어 있던 일본이 잡아당기는 힘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동해가 형성됐다는 걸 입증하는 현장” 등의 문구로 해당 지역을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조형물 공사를 앞두고는 지표 조사는커녕 문화재청 등 관계 기관과 사전 협의조차 하지 않았다. 포항시가 사전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어도, 이번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작품이 들어서는 곳은 문화재보존구역으로 표시돼 있지 않던 곳”이라고 해명했다.

전문가 참관조사에만 5억5,000만 원이 예상됐다. 화석과 같은 매장문화재 조사와 발굴 비용은 사업 시행자 부담이다. 공동시행자인 포스코와 포항시는 책임과 비용 문제를 놓고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포항시 관계자는 "우선 참관조사를 해야 발굴과 동시에 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며 "최악의 상황에는 조형물 공사를 중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포항= 김정혜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