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발사한 탄도미사일은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개량형’이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6일 “국방과학원이 25일 새로 개발한 신형전술유도탄 시험 발사를 진행했다”며 “이미 개발된 전술유도탄의 핵심기술을 이용하면서 탄두 중량을 2.5톤으로 개량한 무기 체계”라고 공개했다.
탄두 중량을 2.5톤으로 늘려 전술핵 탑재 가능성을 활짝 열어 둔 것, 고체 연료 엔진 사용 기술을 과시한 것 등엔 미국을 건드려 보겠다는 의도가 담겼다. 다만 단거리미사일을 골랐다는 것,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발사 현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일단은 미국을 떠보기만 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한 사진과 내용을 종합하면, 신형전술유도탄은 올해 1월 8차 당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공개한 ‘북한판 이스칸데르 개량형’과 일치한다. 이전 북한판 이스칸데르에 비해 탄두가 길고 뾰족해졌다. 이동식발사차량(TEL) 바퀴도 4축에서 5축으로 늘어나 미사일 동체가 길어졌다.
북한이 무기 앞에 붙이는 ‘전술’은 단거리를, ‘유도탄’은 미사일을 의미한다. 북한이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도입해 개량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이른바 ‘북한판 이스칸데르’다. 2019년 첫 발사에 이어 이번엔 개량형을 시험 발사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판 이스칸데르’를 ‘KN-23’(KOREA NORTH -23번 무기)이라고 명명했다.
북한이 미국에 발신하려는 메시지는 '탄두 중량'에 응축돼 있다. 탄두 중량이 1톤에서 2.5톤으로 늘면서 전술핵(소형 핵무기) 탑재가 용이해졌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핵탄두를 굳이 소형화하지 않아도 전술핵을 실어 날리기 쉬워졌다”고 설명했다.
이스칸데르는 탐지, 요격이 어렵다. 하강 단계에서 수평 저공 비행을 하다 다시 급상승하는 풀업(pull-up) 기동으로 변칙적인 비행 궤적을 그리기 때문이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밀도가 높아지는 대기권의 경계선인 40~70㎞에서 물수제비처럼 미사일이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에 대기권 밖의 표적을 상대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ㆍTHAAD)나 저고도 요격용인 패트리엇(PAC-3) 등도 상대하기가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파괴력 자체가 커진 것이다.
북한은 또 “개량형 고체연료발동기의 믿음성을 확증했다”며 고체연료 엔진 사용 가능성도 언급했다. 고체 연료는 액체 연료보다 연료 주입이 빨리 끝나 발사 징후를 탐지하기 어렵다.
북한은 또 “시험 발사한 2기의 신형전술유도탄이 조선 동해상 600㎞ 수역의 설정된 목표를 정확히 타격했다”고 발표했다. 합동참모본부와 일본 군 당국이 25일 추정한 450㎞보다 150㎞가 더 길다. 북한이 2019년 옛 이스칸데르를 처음 시험 발사했을 때의 사거리(240㎞)의 2.5배 수준이다.
북한이 교묘하게 사거리를 부풀렸을 가능성이 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발표를 보면 ‘600㎞’가 아니라 ‘600㎞ 수역의 설정된 목표’라고 언급했다”며 “발사 당시 사거리가 아니라 최대 사거리를 600㎞로 설정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탄두 중량 2.5톤이 과장됐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신종우 위원은 “옛 이스칸데르와 비교하면 총 길이가 1m 늘었지만, 탄두부가 아닌 동체 부분”이라며 “탄두부에 큰 변화가 없는데 탄두 중량이 2배 이상 늘었다는 북한 주장을 그대로 믿어야 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이번 도발은 사거리만 보면 대남 위협용이다. 최대 사거리가 600㎞라면 한반도 전역이 타격권이다. 탄두 중량과 사거리가 반비례하는 미사일 원리상 탄두 중량을 줄이면 1,000㎞ 떨어진 일본도 겨냥할 수도 있다. 미국 본토를 위협하진 못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가 더 크다고 본다. 전술핵 탑재가 가능해졌다는 점을 과시해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핵능력 축소) 협상을 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과 옛 소련이 1980년대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맺은 것도 소련이 이스칸데르를 개발하고 실전 배치했기 때문”이라며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핵군축협상을 하자는 메시지를 미국에 던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1월 8차 당대회에서 ‘전술핵무기 개발’을 선언했고 열병식에서 ‘북한판 이스칸데르 개량형’을 선보였다. 김 위원장은 25일 시험발사장에 참관하진 않았다. 이는 대미 압박 수위를 조절하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김 위원장이 발사 현장에 나타났다면, '미국은 들으라'는 신호로 해석됐을 것이다. 미사일 시위는 하면서도 김정은의 등장은 다음 카드로 남겨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앞으로 미국의 반응을 보며 도발 수위를 단계적으로 끌어올릴 공산이 크다. 북한은 21일 유엔 제재를 받지 않는 순항미사일 발사에 이어 나흘 만에 미국 본토를 위협하지 않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으로 미국 반응을 떠 봤다. 북한이 말하는 대로 '미국 하기에 따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같은 고강도 도발을 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