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에선 알코올음료, 즉 술을 금한다. 이슬람권 국가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음주는 물론이고 술 생산도 금지다. 외국인일지라도 입국할 때 술을 소지할 수 없다.
그런데 이슬람 문화권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인 ‘아라비안나이트’엔 술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드바드의 일곱 가지 모험 가운데 다섯 번째 이야기에 와인이 등장한다.
신드바드는 짐을 날라주고 받는 품삯으로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고 있었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이었다. 지친 나머지 짐을 내려놓고 부잣집 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누구는 무거운 짐을 나르고 겨우 몇 푼 받는데, 누구는 호의호식하고 사는구나!” 그는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신세를 한탄했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부잣집 시동이 나왔다. 집주인이 신드바드를 만나보고 싶어 한다며 그를 안으로 이끌었다. 알고 보니 주인 이름도 신드바드였다.
부잣집 신드바드는 젊은 시절부터 선원으로 일하며 온갖 모험을 겪고 부자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짐꾼 신드바드에게 자신의 모험담을 들려주었다. 이 모험담은 셰에라자드가 1,001일 동안 왕에게 들려준 이야기 가운데 한 편이다.
어느 날 항해에 나선 신드바드의 배가 박살 났다. 침몰하는 배에서 겨우 빠져나온 신드바드는 판자에 의지해 어느 섬에 다다랐다. 섬은 무척 아름다웠다. 숲에는 과일나무가 빼곡했다. 탐스럽게 열린 과일을 보자 허기가 몰려왔다. 그는 허겁지겁 과일을 먹고는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그는 근처 우물가에서 한 노인을 발견했다. 중풍을 앓은 듯 노인은 몸이 불편했다. 노인은 신드바드에게 자신을 업어 강가로 데려다 달라고 애원했다. 그는 알라에게 복을 짓는 일이라 여겨 노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목적지에 다다랐지만 노인은 내리기는커녕 두 발로 신드바드의 목을 조르며 놓아주지 않았다. 노인은 그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면서 자기 맘에 안 들 때면 다리로 그의 목을 더 세게 옥죄었다. 심지어 그의 몸에 대소변을 보기까지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신드바드는 노인과 ‘한 몸’으로 괴롭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드바드는 포도가 주렁주렁 열린 포도나무를 발견했다. 그는 포도를 따서 으깨어 조롱박에 넣고는 주둥이를 막은 다음 며칠 동안 발효 시켜 와인을 만들었다. 신드바드는 와인을 마시며 괴로움을 달랬다. 술기운이 오르면 흥얼거리며 춤을 추기도 했다. 노인은 그가 마시는 음료에 궁금증이 생겼다. 신드바드는 노인에게 와인을 건넸다. 노인은 와인을 욕심껏 마시더니 그만 취해 축 늘어졌다. 신드바드는 이때다 싶어 노인을 몸에서 떼어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는 알라에게 감사 기도를 올렸다.
이 이야기는 마치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에게 와인을 먹여 곯아떨어지게 한 다음 그의 눈을 찌르고 탈출하는 이야기와 흡사하다. 그러고 보면 알코올과 이야기에는 시공이 없는 듯하다.
아무튼, 아무리 이야기라지만 술을 금하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술 이야기가 이렇게 버젓이 등장해도 될까. 더구나 이야기를 보면 신드바드는 와인으로 기지만 부리는 게 아니라 와인을 만드는 법도 알고 있고 마시기까지 한다. 이를 알라의 은총이라며 기도까지 올리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예언자 무함마드가 23년 동안 알라로부터 받은 계시를 기록한 쿠란에는 ‘천국에서는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다’(56:18) ‘그 술은 두통과 취하는 일이 없는 술이다’(56:19)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이슬람교는 왜 술을 금할까.
여기엔 사연이 있다. 이슬람 학자들에 따르면, 어느 날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해 와인을 마신 무함마드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함께 와인을 마신 친구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고 행복감에 젖어 더 친밀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와인에 축복을 내렸다. 다음날에도 같은 장소에 친구들이 모여 와인을 마셨다. 그런데 전날과는 달리 취한 친구들이 편을 갈라 싸우더니 급기야 크게 다쳐 피를 흘렸다. 죽은 친구도 있었다. 무함마드는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 술이라 여겼다. 그는 와인에 내린 축복을 거두고 저주를 퍼붓고는 신도들에게 금주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슬람교에서는 도박하거나 우상이나 미신을 섬기거나 술을 마시거나 생산하는 것을 금한다. 사탄이 술과 도박을 이용해 사람들 사이에 반목과 증오를 일으키고 알라와 기도에서 멀어지게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편, 무함마드는 금주령을 내리면서 신도들에게 특이한 지시를 했다. “포도즙이나 대추야자즙을 보관할 때 호리병이나 안쪽에 송진을 칠한 토기, 야자나무로 만든 그릇의 사용을 금한다. 하나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는 허용한다.” 일견 이 지시에 따르면 술을 만들지 못할 듯하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와 같은 구절도 있지 않던가. 무함마드의 이 특이한 지시로는 술 생산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재밌게도 무함마드 역시 완전 금주를 하지는 않은 듯하다. 그의 부인 중 한 명이었던 아이샤에 따르면, 무함마드도 살짝 발효한 음료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나는 그를 위해 나비드를 준비했다. 대추야자나 말린 포도를 가죽 주머니에 넣고 물을 붓고 기다리면 나비드가 된다. 그는 아침에 만든 나비드는 저녁에, 저녁에 만든 나비드는 다음날 아침에 마셨다.”
무함마드가 금주령을 내리자 몇 세기 동안은 무슬림 사이에서도 상당한 저항이 있었다고 한다. 이슬람 세력이 뻗어 나간 곳들은 수천 년 동안 와인과 맥주를 마시던 곳이지 않던가.
이슬람교는 무함마드가 창시하고 100년도 안 된 8세기 초반 즈음, 중동뿐만 아니라 지중해 연안의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반도의 에스파냐, 포르투갈, 프랑스 남서부에까지 세력이 확장된다. 이 지역 곳곳은 역사적으로 술과 관련이 깊다.
아라비아는 사막지대라 와인을 생산할 수 없었지만 6세기부터 큰 시장이 열려 페르시아와 비잔틴 상인들이 가져온 와인을 마셨다. 노아가 처음 와인을 만들었다는 아라라트산, 와인 신화로 유명한 잠시드 왕이 살았던 페르시아, 문명이 시작될 때부터 맥주와 와인을 생산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크레타, 이보다는 역사가 짧지만 기원전 7세기부터 와인 산업이 크게 발전한 시칠리아와 이베리아반도 역시 당시 이슬람 세력권이었다. 8세기부터 시작된 증류주의 역사도 이곳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처럼 술의 역사가 오래된 지역에서 아무리 종교적으로 술 생산과 음주를 금한다고 해도 과연 지켜질 수 있었을까. ‘알코올’이란 말도 아랍어 ‘알-쿠흘’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아무튼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금주령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 중심부에선 금주에 대한 제재가 비교적 엄격했지만, 먼 곳일수록 규제가 쉽지 않았다. 특히 에스파냐, 포르투갈, 시칠리아, 사르데냐, 크레타에서는 공식적으로 와인을 비롯한 모든 술 생산이 불법이었지만 멀리 떨어진 ‘덕’에 세금을 내면 포도재배는 물론 술을 사고팔 수도 있었다.
독실한 무슬림이 아닌 대부분의 무슬림 상류층들은 집 실내를 두꺼운 천으로 가리고는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심지어 지도자인 일부 칼리프들도 술을 마셨다. 이들은 주로 와인을 즐겨 마셨다. 이들에게 와인을 공급한 사람들은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상인들이었다. 세금만 내면, 무슬림이 아니면 타 종교인에게는 와인 유통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한편 에스파냐에서는 이슬람 율법 학자의 ‘억지 해석’ 덕분에 음주가 일부 허용되기도 했다. “쿠란에서 금지한 술은 포도로 빚은 술이지 대추야자는 아니다. 그렇다면 포도주가 대추야자주보다 알코올 도수가 낮다면 포도주 역시 마셔도 된다.” 틈이 생기자 집으로 손님을 초대해 몰래 여는 와인 모임이 유행했다. 이들의 와인 모임을 자세히 보면 마치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향연과 흡사했다.
초대받은 ‘술친구’들이 도착하면 먼저 음식을 대접한다. 그 뒤 몸을 깨끗하게 씻고 격식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는다. 술친구들은 옆방으로 안내돼, 연장자는 긴 의자에 눕듯이 앉고 젊은이는 그 뒤에 자리를 잡고 선다. 이윽고 큰 잔에 와인이 담겨 나오면 와인을 돌려 마신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그랬듯 이들 역시 와인 원액을 그대로 마시지 않았다. 꿀이나 향신료를 섞고 물이나 얼음으로 희석해 마셨다.
다른 점도 있었다. 와인에 마약 성분을 첨가한 것이다. 몸과 기분이 들떠 몽롱한 상태에서 악사의 음악을 듣고 무희의 춤을 감상했다. 다음날 아침까지 모임은 계속됐다. 특이하게도 참석자들은 와인을 찬양하는 시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주로 와인의 장점이나 맛과 향을 찬양하는 내용인데, 이들이 남긴 시들은 10~12세기 동안 아랍 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했을 정도다. 아부 누와스와 오마르 하이얌이 당시 활동한 대표적인 시인이다.
한편 이븐 시나(980-1037)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의 의사이자 학자였다. 그는 와인으로 비약을 만들어 왕과 왕실 가족의 병을 낫게 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명의로 소문이 자자했기에 그의 처방은 널리 응용되었다.
뜬금없이 이븐 시나를 언급한 까닭은, 술을 마실 방법이 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술이 금지되긴 했지만, 약으로 쓰는 술은 일부 허용이 됐다. 예외가 있으면 꼼수가 생기는 법. 아픈 사람 아프지 않은 사람 할 것 없이 마음만 먹으면 술을 마실 수 있었다.
후대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는 재미있는 기록을 남겼다. 그는 ‘신곡’ 지옥 편에서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붙었다 반복하는 형벌을 받는 곳에서 고통받는다고 묘사했다. 그런데 이븐 시나는 가장 덜 고통스러운 곳인 림보에서 소크라테스, 히포크라테스와 같은 위인들과 함께 지내는 것으로 그렸다. 그만큼 그의 의학적 공이 컸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슬람 문화권에서 시도한 금주령은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은밀하게 술을 만들거나 마셨다. 이슬람교 자체도 때에 따라 술 생산을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술 생산과 음용을 금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불경한 상상’을 해본다. 앞서 단테가 신곡에 그렇게 묘사한 까닭은 종교적인 이유였으리라. 그런데 혹, 단테가 술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한 나머지, 술을 금지한 자와 술 마실 여지를 준 자를 구분해서 지옥의 서로 다른 원 안에 기거하게 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