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피엔딩'이라는 단어가 있다. ‘헬조선식 해피엔딩’이라는 뜻으로 어떠한 일이 상식과 이치에 맞지 않는 쪽으로 귀결될 때 주로 사용된다. 예컨대 폭행당하고 있는 사람을 도운 의인이 오히려 쌍방폭행으로 입건돼 처벌받았다든지, 중소기업이 장기간의 연구개발 끝에 내놓은 제품을 대기업이 홀랑 베껴서 더 큰돈을 벌었다든지 하는 사건들이 전형적인 헬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말로는 권선징악, 인과응보가 있다.
사실 헬피엔딩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친일파의 후손은 떵떵거리며 사는데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가난을 면치 못한 역사, 불의와 불공정이 합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용인되었던 현실은 늘 도돌이표처럼 반복되었다. 지도자들도 그걸 모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걸었던 비정상의 정상화라든가 문재인 대통령이 주장한 적폐청산과 같은 구호들은, 비록 표현은 더 고급스럽지만, 이제 헬피엔딩을 끝내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런데 LH 사태가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으니 꺼림칙한 느낌이 든다. 다시 한번 헬피엔딩에 착잡한 심경을 달래야 할 것 같아서다. 지난 2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을 제기하면서 사람들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당정은 엄정대응을 천명했다. 그리고 이내 합동수사단을 꾸려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조사결과는 맹탕. LH 직원 1만4,000여 명을 조사했지만 투기 의심자 7명을 추가 적발하는 데 그쳤다. 심지어 그 7명은 2주가 지나도록 인사조치 되지 않고 멀쩡히 일하고 있다. 그 와중에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LH 직원들이 신도시가 지정될 줄 모르고 샀는데 신도시로 지정된 것”이라는 소리나 늘어놓으며 사람들 마음에 염장을 질렀다가 논란이 일자 꼬리를 내렸다.
어느 LH 직원은 “꼬우면 (자기 회사로) 이직하라”며 대놓고 국민을 조롱하기도 했다. 그들이 “회사 잘려도 땅 수익이 평생 월급보다 많을 것”이라며 자신할 수 있었던 건 이 나라에서 거듭된 헬피엔딩의 학습효과다. 잠깐만 버티면 모든 게 흐지부지 끝날 거란 믿음, 설령 처벌을 받더라도 그 벌을 훨씬 상회하는 큰 이윤을 얻게 될 거라는 신념. 이 정신이 강고한 사람만이 헬피엔딩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미 헬피엔딩의 복선은 여기저기 깔려 있다. 온 정부 기관이 땅 투기 조사한다며 난리법석이지만 수사는 할 때마다 개인정보보호라는 벽을 넘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고, 그동안 투기꾼들이 얻은 부당이익을 환수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는 소급 적용이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오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원칙들은 꼭 이럴 때만 철저하게 지켜지는가?
헬피엔딩은 그 패턴이 유사해 결말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재·보궐선거가 끝나면 “LH 사태는 수사결과를 지켜보자”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대두된다. 아니면 새로운 이슈가 불거진다. 그렇게 LH 사태가 기억에서 흐릿해질 즈음 “현행법상 처벌이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처음 적발된 몇 명만 약간의 처벌을 받고 선량한 사람들은 바보가 된다.
하지만 드라마에는 반전도 있는 법. 아직은 헬피엔딩이 아닌,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하는 기대도 조금은 간직하고 싶다. 이 나라가 근본부터 썩어 문드러진 게 아니라면 말이다.